기타 2024년 치매인구 100만 명 시대… 이들이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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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3-11-23 10:46 조회 692회 댓글 0건본문
월간조선 뉴스룸 12 2023 MAGAZINE
⊙ 엄마 수급자 만들어 요양원 입소시킨 딸… 밤새워 우는 老母
⊙ 기억 사라져도 감정은 남는다… “우리도 고통과 슬픔을 느낍니다”(하세가와 가즈오)
⊙ 배회, ‘집에 내 공간 없다’고 느낀 것… 할 일 빼앗지 말아야(단노 도모후미)
⊙ 알츠하이머 최대 위험인자는 老化… 高齡化가 낳은 병
⊙ 조기 발견·조기 진단으로 비극 막아야… 가족 조력 必
⊙ 편견은 마음속에 있는 것… 치매 사실 알리면 또 다른 삶
⊙ ‘운동·식습관·숙면’… 불치병 알츠하이머 예방법 3가지
가까이서 본 인생은 비극이 맞는 것 같다. 그곳엔 다양한 군상(群像)이 살고 있었다. 다만 보통의 모습과는 달랐다. 구성원은 기억을 잃은 이들이다.
“빨리 집에 가서 쪽파 다듬어야 혀. 장(場)에 내다 팔아야 한단 말이여. 버스 놓치겄어!”
몸이 기역자로 잔뜩 구부러진 노파(老婆)가 애원하듯 말했다. 한 손엔 싸다 만 가방이 들려 있었다. 9년 차 간호조무사 김영경(가명·61)씨의 말이다.
“지난달 새로 오신 91세 할머니예요. 평생 부추 농사를 지어 내다 팔았다고 합니다. 매일같이 하루 3대 다니는 버스를 타고 읍내 시장에 나가신 거죠. 아직은 이곳에 본인이 갇혀 있다고 여겨요. 버스 올 때 됐다, 여기서 나가야 한다, 부추 팔아서 아들 용돈 줘야 한다, 하면 보는 저희도 가슴이 쓰립니다.”
“또 수프가 나오면 가서 혼쭐을 내줄게요”
전라북도의 한 요양원. 김씨는 “인생이란 게 참, 허무한 것 같다”고 했다.
“할머니들 손을 보면 지문이 하나도 없어요. 젊은 날 꽃핀 줄도 모르고 일만 하다, 결국 저 몸이 돼서도 자식 걱정만 하는 게 참 서글픕니다. 이리될 줄 알았다면, 당신 하고 싶은 것 하고, 좀 즐기며 사시지….”
경기도 한 요양시설의 점심시간. 디귿자로 된 식탁 한 귀퉁이에서 호통 소리가 터져 나왔다.
“메뉴가 이게 뭐야? 이게 수프지, 밥이야? 이런 맹물을 먹고 칼로리 보강이 돼? 이걸로 90kg 체력을 유지하겠느냐고. 자꾸 이렇게 나오면 시장(市長)한테 항의할 거야. 여기 손 좀 봐야 되겠어!”
금테 안경 너머 노인의 눈이 희번덕였다. 식판 위에는 먹음직스러운 샐러드와 닭요리, 그리고 국이 놓여 있었다. 이곳 부원장은 소리가 난 쪽으로 다가가 “어르신 죄송합니다. 이따 저녁에도 또 수프가 나오면 냉큼 저한테 일러주세요. 가서 혼쭐을 내줄게요”라고 했다. 그러더니 능숙한 손길로 입가에 묻은 밥풀을 닦아줬다. 역정을 내던 그는 “당신 뭐야? (명찰을 보더니) 부원장이야? 흠. 부원장 정도면 말이 통하겠구먼. 당신 소임을 다해. 앞으로 또 이러면 내 가만히 안 있어”라고 했다. 부원장의 말이다.
“매일 식사시간 때면 나오는 레퍼토리예요. 저작(咀嚼) 기능이 좋지 않아 죽을 드셔야 하는데, 죽이 나왔다고 항의하는 거죠. ‘어르신, 그런데 시장 이름이 뭐였지요?’ 하면 ‘이명박’이라고 하셔요.”
군(軍) 간부 출신이라고 했다. 여든이 넘은 그의 병실에는 곱게 다린 제복이 걸려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엔 계급장이 없다. 모두 똑같은 침대에서 자고, 같은 곳에서 밥을 먹는다.
興만 남은 자와 毒氣만 남은 자
삼시세끼 식사와 오전, 오후 간식. 체조, 그림 그리기 등 프로그램, 그리고 낮잠, 휴식. 같은 일과에 움직이는 이들의 증세는 천차만별이다. 간호조무사 김영경씨가 일하는 곳은 소규모 여성 전문 요양원이다. 10여 명의 입소자 모두 할머니다.
“하루 종일 혼잣말하는 분이 계세요. ‘안녕하세요, 오셨어요. 네, 잘 지내셨어요. 두 분 오랜만에 만나셨나 봐요’ 하면서 1인 3역(役)을 하시죠. 그런가 하면 과거 외도(外道)를 의심받았던 한 할머니는 허공에 대고 늘 ‘종민(가명) 엄마, 제가 안 그랬어요. 나는 저 사람을 모릅니다’라 하시고요. 교회 성가대였던 분은 종일 박수 치며 찬송가를 부르고, 거기 맞춰 춤만 추시는 분도 계시고요. 흥(興)만 남은 분, 독기(毒氣)만 남은 분, 40대로 회귀하신 분, 일곱 살 때로 돌아가신 분…. 각양각색입니다.”
김씨는 “재미있는 건 이 작은 곳에도 서열이 있다는 것”이라면서 “터줏대감인 98세 할머니가 먼저 수저를 들고, 60대 할머니가 ‘새파랗게 어린것’이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그럴 때 한 번씩 웃는다고 했다. 가장 고될 때는 ‘입소자들이 고집을 피울 때’라고 했다.
“인지(認知)가 조금 남아 있는 분들은 자존심 때문에 기저귀를 끝까지 안 차려 합니다. 소변이 줄줄 흐르는데도 끝까지 거부하세요. ‘옆 할머니가 옷을 훔쳐갔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도 진이 빠지긴 해요. 무조건 달래야 해요. 부정했다가는 폭력성이 나올 수도 있거든요. ‘어머님 말씀이 맞아요. 제가 이따 꼭 다시 뺏어드릴게요’라고요. 그러면 나중에 또 잊어버리세요. 사람이 아이로 태어나 다시 아이가 됐다 흙으로 가는구나 싶습니다.”
요양원에는 보통 노인장기요양 2~4등급이 많다. 여기서 증세가 심해지거나, 지병까지 겹치면 대부분 요양병원으로 간다. 요양원은 노인복지법을 따르는 생활시설이고, 요양병원은 의료법 규제를 받는 의료시설이다.
‘神이 없다는 걸 알게 해준 병’
현재 국내 치매 환자는 약 96만 명으로 추산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내년엔 100만 명을 훌쩍 넘길 것으로 보인다. 65세 이상 노인(950만 명) 10명 중 1명 이상이 치매다. 발병률(發病率)은 나이가 들수록 높아진다. 80세 이상은 10명 중 3명, 85세 이상은 10명 중 4명꼴이다. 고령화(高齡化)가 낳은 병인 셈이다. OECD 평균의 약 1.7배인 한국의 고령화 속도에 따라 2050년 이 수는 300만 명이 될 전망이다. 한 최고급 실버타운 관계자는 “치매 사실을 숨긴 유명인사와 전직 고위급 인사들도 가끔 눈에 띈다”고 했다. ‘왜 하필 나에게’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불가피한 현실일 수 있다.
치매의 정의는 이렇다. ‘퇴행성(退行性) 뇌 질환 또는 뇌혈관계 질환에 의해 기억력, 언어 능력, 지남력(指南力), 판단력, 수행 능력 등 기능이 저하돼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 후천적 다발성(多發性) 장애.(치매관리법 제2조 제1호)’ 이 중 알츠하이머형 치매는 약 60%, 혈관성 치매는 30%, 루이소체 치매는 10% 미만을 차지한다. 이 밖에도 종류는 다양하다.
박기형 가천대 길병원 신경과 교수는 “그간 살아온 일생을 다 잊어버리고, 자신의 주체성(主體性)까지 상실하는 끔찍한 병”이라고 했다. 그는 국내 3대 치매 명의(名醫) 중 하나다.
― 혹자는 ‘신(神)이 없다는 걸 알게 해준 병’이라고도 하더군요.
“음…. 이런 생각이 드는군요. ‘신의 의도와 달리 너무 오래 살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전쟁, 전염병의 영향도 있지만, 로마 시대 평균수명은 29~30세였습니다. 1950~60년대 우리나라 평균수명은 55세 정도였어요. 치매가 오기 전 돌아가신 거죠. 지금은 여기서 30~40년이 늘었는데, 이 증가세는 굉장히 가파른 겁니다. 몸이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어요. 비근한 예로 퇴행성 치매의 대표적인 원인인 알츠하이머병의 위험인자 중 하나가 아포이(ApoE) 유전자 4형입니다. 3형은 보통이고, 2형은 예방 효과를 보이죠. 인간은 안 좋은 유전자들을 버리면서 진화해왔습니다. 이 흐름대로라면, 2형을 가진 사람이 더 많아야 하는데 실제로는 4형을 가진 사람이 더 많죠.”
― 치매를 원인불명이라고들 하는데, 노화(老化)가 원인인 겁니까.
“치매를 일으키는 원인은 수십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인 알츠하이머병의 경우,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의 뇌 침착(沈着)이 대표적인 원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알츠하이머병의 위험인자로는 노화뿐만 아니라 아포이e4·4유전자형, 가족력, 뇌경색, 당뇨, 고·저혈압, 담배 및 다량의 알코올 섭취, 심한 머리 손상 등 다양해요. 가장 큰 위험인자가 노화지만 ‘딱 이 원인 때문에 그렇다’는 건 없어요. 그래서 원인불명이라는 겁니다.”
마지막까지 남는 기억
― 단백질은 필수 영양소인데 왜 뇌에 침착하면 병이 됩니까.
“단백질 종류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아밀로이드’라는 물질은 상당히 끈적끈적한데,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어요. 다만 체내에서 일정 역할을 하고 뇌척수액을 통해 몸 밖으로 배출돼야 하는데, 이게 한 가닥, 두 가닥씩 엉겨 뇌세포에 염증을 유발하고, 독성(毒性)작용이 있다 보니 뇌를 망가뜨리는 겁니다.”
― 왜 엉기는 겁니까.
“그 또한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걸 알면 치료가 가능할 겁니다.”
― 알츠하이머에 걸리면 왜 최근 기억부터 소실되는 겁니까.
“새로운 사실, 경험 등 단기 기억이 저장되는 장소인 해마와 뇌피질(腦皮質)이 손상됐기 때문이죠. 잠자는 동안 이 두 요소가 계속 커뮤니케이션하며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고착화(固着化)시키는데, 이게 고장 났기 때문에 새로운 기억이 들어가질 못하는 겁니다. 물론 기억이 문제 되지 않는 치매도 있지만, 알츠하이머병의 경우 이 때문에 이미 저장된 기억은 꺼내 쓸 수 있고, 일화(逸話) 기억은 떠올리지 못합니다.”
― 이들에게 마지막까지 남는 건 어떤 성질의 기억입니까. 예컨대 트라우마 같은 겁니까.
“감정이 남는 거죠. 각자에게 가장 중요하게 남은 감정을 다스리는 게 변연계(邊緣系)입니다. 우리 뇌 가장 중심부에 있어 굉장히 나중까지 유지되죠. 정상 상태일 때는 전두엽(前頭葉)이 이 감정을 억제해주지만, 이게 망가지다 보니 본연의 감정들이 나오게 되는 겁니다. 그게 어떤 감정인지는 저마다 다르겠죠.”
시각·청각·후각의 환각
― 행복하게 살았다면, 듣기 좋은 말을 하겠군요.
“행복이라는 정의는 각기 다르기 때문에 긍정적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만, 치매 후 공격성을 띠는 이들이 모두 부정적인 사고로 살았다는, 혹은 그 반대의 경우에 대해서도 전혀 검증된 바는 없습니다. 단정 지어서는 안 됩니다.”
흔히 ‘기억 상실’에 초점을 맞추지만, 치매 증상은 다양하다. 정영희 명지병원 신경과 교수는 “치매는 기억력만 떨어지는 게 아니다”라면서 “배회, 망상(妄想), 환시(幻視), 공격성과 같은 문제행동들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를 행동심리증상(BPSD)이라 한다.
베스트셀러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의 저자인 영국인 치매 환자 웬디 미첼은 책에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치매 후 시각·청각·후각의 환각 현상을 소상히 기록해놨다. 검은 테이블보를 덮어놓은 식탁이 거대한 싱크홀처럼 보이고, 귓전에서 갑자기 경적 소리가 들리고, 휘발유 타는 냄새가 밀려오기도 한다고 했다. 박기형 교수와의 문답이다.
― 여러 현장에서 보니, 특히 의심되는 증상이 많이 목격되더군요. 왜 나타나는 겁니까.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우선은 기억장애에 기반하는 게 가장 크다고 판단됩니다. ‘여기 뭘 놔뒀는데, 없어졌네. 누가 가져갔지, 그 사람일 거야, 내가 가져가는 것 봤어’라면서 망상이 고착화되는 거죠. 그래서 뭔가를 계속 감추고, 어디에 감췄는지 기억을 못 하니 다시 의심으로 이어지고요. 이러한 망상 증상에 대해서는 워낙 설(說)이 많기 때문에 한 가지로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습니다. ‘A 때문에 B가 됐다’는 공식은 없어요. 그러면 치료가 가능하겠죠. 다만 중요한 물건은 특정 장소에 두시라고 유도하면 이런 증상을 완화할 수 있습니다.”
“행동반경이 좁아지면 치매에 안 좋다”
정영희 교수는 “치매 환자는 불안하거나 우울할 때 물건을 숨긴다거나, 주변을 의심하는 행동이 잦아진다”고 했다.
“따라서 치매 환자를 안정시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제재가 너무 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불안하다고 꼼짝도 못 하게 하면 오히려 더 안 좋아요. 일례로 치매 환자들이 이사를 하면 상태가 나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치매 환자의 경우 새로운 걸 학습하는 건 어렵지만, 오랫동안 몸에 밴 건 익숙하거든요. 동네를 걷기도 하고, 현관 비밀번호도 익숙하게 눌렀지만 이사를 가면 그 모든 게 새롭게 다가옵니다. 결국 행동반경이 좁아지면 치매에도 안 좋죠.”
치매 환자들은 대부분 집이나 요양시설에서 산다. 실버타운은 상위 0.5%를 위한 곳일 뿐이다. 서울 거주 50대 여성 송은영(가명)씨는 10년 전 치매 어머니를 경기도의 한 요양원에 모셨다. 입소자 100명 이상인 대규모 시설이다. 올해 90세인 어머니는 70세 때 경도인지장애(치매 전 단계) 판정을 받았다. 지금은 저작 능력을 완전히 잃었다고 한다.
6남매 중 막내인 송씨는 어머니의 입소를 크게 반대했다. 나머지 남매들은 “그냥 두면 증상이 더 악화되고, 가족이 힘들어진다”고 했지만 송씨는 ‘6남매 중 엄마를 모실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한다.
“아버지 또한 엄마의 요양원 입소를 반대했어요. 당신이 직접 돌보시겠다면서요. 그렇게 약 10년. ‘힘들다’는 말 한마디 안 하셨지만, 스트레스가 몸으로 발현되더군요. 각종 질환이 찾아와 더 이상 엄마를 돌볼 수가 없었죠. 이때 ‘아버지의 삶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합의에 이르렀습니다. 6년 전, 더 이상 엄마를 혼자 둘 수 없다며 아버지 또한 같은 요양원에 입소하셨습니다.”
孝와 不孝 사이시각·청각·후각의 환각
― 행복하게 살았다면, 듣기 좋은 말을 하겠군요.
“행복이라는 정의는 각기 다르기 때문에 긍정적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만, 치매 후 공격성을 띠는 이들이 모두 부정적인 사고로 살았다는, 혹은 그 반대의 경우에 대해서도 전혀 검증된 바는 없습니다. 단정 지어서는 안 됩니다.”
흔히 ‘기억 상실’에 초점을 맞추지만, 치매 증상은 다양하다. 정영희 명지병원 신경과 교수는 “치매는 기억력만 떨어지는 게 아니다”라면서 “배회, 망상(妄想), 환시(幻視), 공격성과 같은 문제행동들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를 행동심리증상(BPSD)이라 한다.
베스트셀러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의 저자인 영국인 치매 환자 웬디 미첼은 책에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치매 후 시각·청각·후각의 환각 현상을 소상히 기록해놨다. 검은 테이블보를 덮어놓은 식탁이 거대한 싱크홀처럼 보이고, 귓전에서 갑자기 경적 소리가 들리고, 휘발유 타는 냄새가 밀려오기도 한다고 했다. 박기형 교수와의 문답이다.
― 여러 현장에서 보니, 특히 의심되는 증상이 많이 목격되더군요. 왜 나타나는 겁니까.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우선은 기억장애에 기반하는 게 가장 크다고 판단됩니다. ‘여기 뭘 놔뒀는데, 없어졌네. 누가 가져갔지, 그 사람일 거야, 내가 가져가는 것 봤어’라면서 망상이 고착화되는 거죠. 그래서 뭔가를 계속 감추고, 어디에 감췄는지 기억을 못 하니 다시 의심으로 이어지고요. 이러한 망상 증상에 대해서는 워낙 설(說)이 많기 때문에 한 가지로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습니다. ‘A 때문에 B가 됐다’는 공식은 없어요. 그러면 치료가 가능하겠죠. 다만 중요한 물건은 특정 장소에 두시라고 유도하면 이런 증상을 완화할 수 있습니다.”
孝와 不孝 사이
강동실버케어센터 외부에 있는 ‘추억의 버스정류장.’ 치매 어르신의 실종을 막기 위한 가짜 버스정류장이다. 사진=월간조선
이 대목에서 송씨의 목이 메었다. 불효(不孝)하는 것 같다고 했다.
작년 말 기준 요양원 등 노인의료복지시설은 총 6069개소다. 5년 만에 15%가 증가했다. 개수가 늘며 경쟁도 심해졌다. 당사자 집에 직접 찾아가 입소를 설득하기도 한다. 일종의 영업인 셈이다. 요양보호사 박정은(52)씨는 “사는 곳에 직접 가보면, 요양원에 보내는 게 나은 경우가 많다”고 했다.
“시설에 보내는 게 불효 같아서 망설이는 분 댁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치매 당사자가 다 말라비틀어진 밥을 물에 말아 먹고 계시더군요. 위생 상태도 엉망이었고, 화장실도 단차가 너무 높아 위험했어요. 영양사는 물론, 작업치료사, 간호사, 요양보호사까지 있는 요양원이 낫다고 설득했죠. 공동생활하며 함께 어울리면 심리적인 안정에도 훨씬 좋고, 배회 방지에도 도움이 된다고요. 경찰서에서 입소자들 지문 등록을 하고, 만일 못 찾으면 요양원 책임이기 때문에 실종 방지에 굉장히 적극적이거든요. 요양원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서비스 경쟁이 심해진 것도 어떻게 보면 이점입니다. CCTV는 필수고, 매일 주요 부위 씻겨드리고, 일주일에 한 번 목욕, 손발톱 정리, 한 달에 한번 이발에 더해 체조 등 각종 프로그램까지 저마다 신경 쓰고 있으니까요.”
박씨에 따르면 순탄한 합의하에 입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가족 간 갈등은 있기 마련입니다. 늘 반대파와 찬성파로 나뉘어요. 반대파에게 ‘그럼 네가 모시겠느냐’고 하면 해결됩니다. 이후 당사자를 설득해야죠. 그 과정이 가장 어렵습니다. 씁쓸하지만 ‘아버지, 우리 좀 살려주세요’ 하며 읍소 끝에 모시고 오는 분도 있어요. 혹은 ‘엄마, 지금 공사한다고 수도랑 전기가 끊겨서 한동안 집에 못 가요. 당분간만 여기 계세요’라는 거짓말로 모셔다 놓는 경우도 있습니다.
입소 당일, ‘여기 싫다. 나랑 계속 같이 살자’며 울먹이는 어르신도 계십니다. 그렇게 입소하면, 한동안 잠도 안 주무시고 하루 종일 우세요. ‘왜 나를 감옥에 가둔 거냐’면서요. 수년째 봤지만 매번 눈물 나는 광경입니다. 저희는 이 적응 기간을 3개월로 봐요. 이후부터 ‘있어야 할 곳’임을 아십니다. 그때 친구도 사귀고 하시는 거죠.”
수급자가 된 부자 할머니
이런 일도 있다. 최근까지 충청북도 한 요양원에서 근무했던 조선영(가명·43)씨의 말이다.
“보호자들 간 의견 대립도 있지만, 보통은 치매 당사자가 입소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요. 치매 중기쯤 되면 병식(病識)이 없어서 치매 사실을 인정하지 않거든요. 돈 문제도 있습니다. 치매 어르신들은 돈에 굉장히 민감해요. 일하던 곳에 ‘땅부자’로 통하던 90세 할머니가 있었어요. 딸은 엄마를 입소시키려 했는데, 엄마는 돈이 아깝다며 거부했습니다. 결국 딸은 요양원장과 머리를 맞대 그 재산을 모두 본인 앞으로 옮긴 뒤, 엄마를 수급자(收給者)로 만들었습니다. ‘엄마, 수중(手中)에 돈이 없어야 나라에서 돈을 대준대’ 하고 설득한 거죠. 요양원은 입소자 한 명 더 받아서 좋고, 딸은 엄마를 보내서 좋고…. 그렇게 충분히 집에 계셔도 되는 분이 오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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