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학대뉴스 화장실에서 밥 짓고, 잠자는 13억 아파트 경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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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7-08-24 17:00 조회 1,490회 댓글 0건본문
지난 23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한 아파트 경비실. 지은 지 34년 된 아파트의 경비실 안은 두 사람이 마주 앉을 공간이 없을 정도로 좁았다. 기자는 몸을 45도로 틀어 어정쩡한 자세로 경비원 김모(68)씨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벽에 걸린 선풍기가 덜덜덜 소리를 내며 후덥지근한 바람을 연신 보냈다.
한 시간 남짓 대화하는 동안 락스 냄새, 하수구에서 올라온 냄새, 곰팡내가 뒤섞인 화장실 냄새가 코를 괴롭혔다. 김씨는 "문을 닫아두면 환기가 되지 않아 밥을 해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을 만큼 악취가 난다. 항상 문을 열어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 경비원들은 화장실을 부엌이자 침실로 쓰고 있다. 선반 위에는 전기밥솥과 플라스틱 밥주걱, 밥그릇이 놓여 있었다. 다른 쪽 벽에는 프라이팬과 물바가지가 나란히 걸려있었다. 다리를 뻗고 누울 공간이 없어 밤에는 화장실과 경비실에 작은 의자들을 놓고 그 위에 판자를 깔아 변기 쪽에 머리를 두고 잔다.
아파트가 재건축을 추진 중이라 경비초소를 새로 짓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관리사무소 건물 1층에 부녀회 사무실로 쓰던 방이 경비대원 휴게실로 문패를 바꿔 달았지만, 경비원들은 여전히 화장실에서 밥을 푸고, 국을 데운다. 휴게실에는 싱크대와 조리시설이 없고, 문도 늘 잠겨있기 때문이다.
휴게실 열쇠는 ‘반장’이라 부르는 경비책임자 1명에게만 주어진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휴게 시간을 제한하거나 휴게실 이용을 막은 적은 없다. 다만 열쇠는 외부인 출입 등 안전사고를 우려해 나눠주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지하 주차장이 없어 수시로 이중 주차된 차를 밀어야 하고, 한 동 120세대에 밀려드는 택배를 하나하나 대장에 기록해두다 보면 초소를 비울 짬도 나지 않는다.
은퇴 후 집에만 있기 갑갑해 1년 전 마음먹고 직업소개소를 찾았지만 변변한 '스펙'이 없는 60대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김씨는 “경비실을 처음 봤을 때 기가 막혔지만 나이 먹고 갈 데가 없으니 감수해야 한다 생각했다”며 “주민들이 인격적으로 나를 존중해줘서 나름대로 보람을 느끼고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관리회사의 부당한 업무 지시는 열악한 환경보다 더 참기 어려웠다. 지난달 12일 제헌절을 앞두고 관리사무소에서 태극기 60개를 가져가 아파트에 게양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주민 센터의 업무였지만 “자원봉사자가 줄어 일손이 부족하다”며 관리사무소에 협조를 요청한 일이었다.
김씨가 아파트까지 태극기를 옮기고 보니 퇴근시간이 다 되어 이튿날 교대한 다른 직원이 태극기를 달았다. 그런데 관리사무소 측은 "김씨만 태극기를 게양하지 않았다"며 경위서를 쓰라고 했다. 김씨는 "강남구청의 캠페인 전단지에도 게양 기간이 7월 14일부터인데 그보다 일찍 게양하고 왜 경위서를 써야 하느냐"며 버텼다. 김씨는 관리사무소 직원과 갈등을 빚는 과정에서 "노망났느냐"는 모욕적인 발언을 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개발을 앞두고 13억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는 아파트였지만, 그 속에서 일하는 경비원의 여건을 챙기는 손길은 없었다.
김씨는 인권위와 청와대에 진정서를 냈다. 이에 용역회사는 지난 11일 김씨를 성북구 월곡동의 다른 아파트로 발령냈다. 새 근무지는 강남구 세곡동 집에서 2시간이 걸리는데다 첫 차를 타도 출근시간인 오전 6시까지 도착할 수 없는 위치였다. 170만원 남짓한 한 달 월급을 택시비로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김씨가 사정을 이야기하자 월곡동 아파트 관리사무소도 “같이 일하기 어렵겠다”고 난색을 표했다. 용역회사는 월곡동으로 출근을 하지 않은 김씨를 근태가 좋지 않다며 징계위에 회부했다.
대기발령 상태인 김씨는 요즘도 매일 경비대원 유니폼을 입고 변기 옆에서 밥을 짓는 경비초소로 출근한다. 일종의 ‘출근 투쟁’이다. 김씨는 “이 아파트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의 경비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며 경비 이외 업무를 시켜도 해고 당할까봐 말도 못하고 참고 산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현 기자 lee.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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