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운동과 노인운동에서 ‘소외’된 노인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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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11-30 00:00 조회 2,568회 댓글 0건본문
노인여성, 정치적 행위자로 자리매김해야
노인여성은 여성운동에 참여할 자격을 갖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행위자로서 인정되거나 가시화되지 않았다.
나이 듦에 대한 거부감과 노인이 된다는 것
나이 듦은 젊음과 대비되는 것으로서 젊음의 기준에 의해 평가절하된다. “주름은 악몽”이라는 화장품의 광고처럼 나이 듦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할 삶의 과정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고 숨겨야 할 대상이다. 모든 사람이 나이를 먹어가지만 나이든 사람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 사회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빠른 속도와 효율성을 중심으로 하는 ‘남성중심’의 생산 가치를 강조하는 사회에서 나이 듦은 젊음에 비해 가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나이 듦을 드러내고 말하는 것은, 편견이나 비판에 취약해지는 어리석은 행동일 뿐이다.
노인여성은 지역의 노인복지회관을 중심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제공 받고 활동할 수 있다. 비문해여성의 경우 한글교육을 받기도 하고 컴맹에 탈출하기 위해 컴퓨터 교육을 받기도 한다. 또한 연극, 무용 등의 취미활동을 하면서 양로원, 고아원 등을 방문해서 공연하고, 글쓰기를 통해 자서전이나 시집을 출간하고, 지역사회의 독거노인을 위해 자원활동을 하며,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이나 의료서비스를 받는다.
그러나 노인여성이 노인복지회관을 찾아가지 않는 이유는, 회관을 찾는 동시에 자신이 노인이라는 사실을 ‘서글프게’ 인정해야 한다는 점도 포함되는데, 노인여성들은 보다 젊은 연령대의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나이 듦을 잊고 싶어한다.
가부장제가 조장하는 여-여 세대갈등
여성단체의 경우, 단체에서 일하는 노인여성이 있다 하더라도 단체 책임자 위치인 경우가 많다. 책임자가 아닌 노인여성은 자신의 나이 듦으로 인해 보수적이거나 위계적이거나 비판의식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 젊은 활동가의 ‘신선함’이나 ‘활기’에 위축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분위기다.
한편, 노인단체 안에서 노인여성은 보조적인 역할을 맡거나 여성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때로 노인단체의 토론회에 가보면, 노인들의 젊은 세대에 대한 분노가 ‘며느리’로 대표되는 젊은 여성집단을 향해 빗발치듯이 쏟아진다. 이러한 갈등은 노인남성과 젊은 여성의 관계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시어머니 위치의 노인여성과 젊은 여성간의 세대간 갈등, 여-여 갈등으로 치닫기도 한다.
노인여성은 아이를 많이 낳지도 않고 남편이나 시부모를 제대로 보살피려 하지 않으면서 자기주장만 강하다고 젊은 여성을 비판하기도 한다. 또한 자신들이 해오던 방식으로 여성들이 가족을 위해 희생하지 않기 때문에 양육과 노인보살핌에 대해 쓸데없는 비용을 낭비함으로써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논리를 지지하기도 한다.
젊은 여성의 임금노동은 결혼한 자녀의 가사를 돌보거나 손자녀를 떠맡아야 하는 노인여성의 이해와 충돌할 수 있다. 그러나 여-여간의 갈등처럼 보이는 문제의 원인은 여성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남성이 아닌 여성만이 가사노동이나 양육의 문제를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데에서 겪는 어려움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가족 내에서 부딪히는 젊은 여성과 노인여성의 갈등은 여성간의 차이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다. 여성에게만 가사와 양육의 부담을 전가시키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많은 여성이 겪어야 하는 성차별적 구조의 문제다.
노인여성의 경험도 각기 다르다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길어진 노년기의 모든 여성을 노인여성으로 통칭하고 하나로 묶어버리는 것은 노인여성간 차이를 간과하는 것이 된다. 노인여성은 연령에 따라 좀더 세분화될 필요가 있다. 가족 내에서 취업자녀의 가사노동과 손자녀 양육을 지원하거나, 자원활동이나 임금노동을 원하는 초기 노인여성의 삶과, 타인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후기 노인여성의 삶은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초기 노인여성이 활발한 사회참여를 통해 노인여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해야 할 수 있다고 한다면, 후기 노인여성은 실질적으로 활동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초기, 중기 노인여성과 함께 노인보살핌 문제 등 관련된 사안들에 대해 사회적으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여성운동은 각 여성단체들의 활동영역에 따라 황혼이혼이나 노인여성의 학대문제, 노인여성의 가난, 노동권의 쟁점들을 다루어왔지만, 막상 노인여성을 단체의 회원으로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다든가 노인여성을 위한 교육이나 정책 연구를 하는 것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노인여성은 젊은 여성에 비해 남성과의 관계에서 희생과 인고의 삶을 살아왔으므로, 성 평등적인 관점에서 보면 보수적이고 완고한 태도를 보여줄 수 있다. 또한 노인여성은 열정과 움직임이 적고, 섬겨야 할 존재로서 불편하게 인식되기도 한다. 노인여성이 어린 사람 밑에서 일하거나, 조직에서 나이든 사람을 하급자로 두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만연한데, 우리 사회가 유교문화의 ‘장유유서’라는 연령규범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여성운동, 노인여성의 참여 이끌어내야
고학력, 전문직 출신의 노인여성들은 자신들이 저학력, 가난한 노인여성과 함께 이야기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여성들은 개인의 능력이나 경력에 따라 노인이 되어서도 교육이나 임금노동의 기회를 얻고자 한다. 이들은 권익신장을 위해 노인여성을 위한 조직이나 단체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사회구조적인 성차별과 연령차별의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문제를 인식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데에는 한계를 갖고 있다.
한편, 노인여성이 전업주부로서 사적 영역에서 보살핌을 수행해왔다면, 공적 영역에서 의사소통의 방식을 훈련 받지 못했기 때문에 정치적 행위자로서 말하고 토론하는 과정에 익숙하지 않다. 이처럼 젊은 여성들보다 남성과의 관계에서 힘든 삶을 살아 왔던 노인여성들이 여성주의 관점에서 자신의 경험을 고통이나, 한(恨), 희생 등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자신의 삶을 재해석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의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
노인여성의 경험을 듣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소외되어 온 여성의 역사를 배우고 쓰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과정을 통해 노인여성은 여성주의 관점을 훈련 받고, 자신의 위치에서 임금노동이나 노인보살핌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노인여성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은 여성운동 안에서 연령차별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 주고, 나이 듦에 대한 거부감에서 벗어나 자신의 노년을 준비할 수 있게 해준다.
여성운동 역사에서는 노인여성으로서 위치를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연령의 차이를 넘어 여성간의 연대를 모색하는 투쟁이 존재해 왔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시위를 비롯해 중노년기에 있는 동일방직 해고 여성노동자의 복직투쟁이 바로 그러한 예라 할 수 있다.
노인여성에게는 젊은 여성과 동등한 인격체로서 짐을 나누어 지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다른 연령대의 여성은 노인여성이 나이 듦에 따라 다른 속도를 갖고 있고, 이동성에서 제약을 갖는다는 점 등의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 상호간 차이에 대한 이해 속에서 여성운동은 주변화된 노인여성의 억압적 경험에 귀 기울이고 노인여성을 정치적 행위자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과정은 젊은 여성들의 위치에서는 보이지 않던 문제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성찰하게 해줄 것이다.
노인여성은 여성운동에 참여할 자격을 갖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행위자로서 인정되거나 가시화되지 않았다.
나이 듦에 대한 거부감과 노인이 된다는 것
나이 듦은 젊음과 대비되는 것으로서 젊음의 기준에 의해 평가절하된다. “주름은 악몽”이라는 화장품의 광고처럼 나이 듦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할 삶의 과정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고 숨겨야 할 대상이다. 모든 사람이 나이를 먹어가지만 나이든 사람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 사회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빠른 속도와 효율성을 중심으로 하는 ‘남성중심’의 생산 가치를 강조하는 사회에서 나이 듦은 젊음에 비해 가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나이 듦을 드러내고 말하는 것은, 편견이나 비판에 취약해지는 어리석은 행동일 뿐이다.
노인여성은 지역의 노인복지회관을 중심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제공 받고 활동할 수 있다. 비문해여성의 경우 한글교육을 받기도 하고 컴맹에 탈출하기 위해 컴퓨터 교육을 받기도 한다. 또한 연극, 무용 등의 취미활동을 하면서 양로원, 고아원 등을 방문해서 공연하고, 글쓰기를 통해 자서전이나 시집을 출간하고, 지역사회의 독거노인을 위해 자원활동을 하며,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이나 의료서비스를 받는다.
그러나 노인여성이 노인복지회관을 찾아가지 않는 이유는, 회관을 찾는 동시에 자신이 노인이라는 사실을 ‘서글프게’ 인정해야 한다는 점도 포함되는데, 노인여성들은 보다 젊은 연령대의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나이 듦을 잊고 싶어한다.
가부장제가 조장하는 여-여 세대갈등
여성단체의 경우, 단체에서 일하는 노인여성이 있다 하더라도 단체 책임자 위치인 경우가 많다. 책임자가 아닌 노인여성은 자신의 나이 듦으로 인해 보수적이거나 위계적이거나 비판의식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 젊은 활동가의 ‘신선함’이나 ‘활기’에 위축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분위기다.
한편, 노인단체 안에서 노인여성은 보조적인 역할을 맡거나 여성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때로 노인단체의 토론회에 가보면, 노인들의 젊은 세대에 대한 분노가 ‘며느리’로 대표되는 젊은 여성집단을 향해 빗발치듯이 쏟아진다. 이러한 갈등은 노인남성과 젊은 여성의 관계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시어머니 위치의 노인여성과 젊은 여성간의 세대간 갈등, 여-여 갈등으로 치닫기도 한다.
노인여성은 아이를 많이 낳지도 않고 남편이나 시부모를 제대로 보살피려 하지 않으면서 자기주장만 강하다고 젊은 여성을 비판하기도 한다. 또한 자신들이 해오던 방식으로 여성들이 가족을 위해 희생하지 않기 때문에 양육과 노인보살핌에 대해 쓸데없는 비용을 낭비함으로써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논리를 지지하기도 한다.
젊은 여성의 임금노동은 결혼한 자녀의 가사를 돌보거나 손자녀를 떠맡아야 하는 노인여성의 이해와 충돌할 수 있다. 그러나 여-여간의 갈등처럼 보이는 문제의 원인은 여성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남성이 아닌 여성만이 가사노동이나 양육의 문제를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데에서 겪는 어려움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가족 내에서 부딪히는 젊은 여성과 노인여성의 갈등은 여성간의 차이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다. 여성에게만 가사와 양육의 부담을 전가시키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많은 여성이 겪어야 하는 성차별적 구조의 문제다.
노인여성의 경험도 각기 다르다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길어진 노년기의 모든 여성을 노인여성으로 통칭하고 하나로 묶어버리는 것은 노인여성간 차이를 간과하는 것이 된다. 노인여성은 연령에 따라 좀더 세분화될 필요가 있다. 가족 내에서 취업자녀의 가사노동과 손자녀 양육을 지원하거나, 자원활동이나 임금노동을 원하는 초기 노인여성의 삶과, 타인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후기 노인여성의 삶은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초기 노인여성이 활발한 사회참여를 통해 노인여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해야 할 수 있다고 한다면, 후기 노인여성은 실질적으로 활동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초기, 중기 노인여성과 함께 노인보살핌 문제 등 관련된 사안들에 대해 사회적으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여성운동은 각 여성단체들의 활동영역에 따라 황혼이혼이나 노인여성의 학대문제, 노인여성의 가난, 노동권의 쟁점들을 다루어왔지만, 막상 노인여성을 단체의 회원으로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다든가 노인여성을 위한 교육이나 정책 연구를 하는 것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노인여성은 젊은 여성에 비해 남성과의 관계에서 희생과 인고의 삶을 살아왔으므로, 성 평등적인 관점에서 보면 보수적이고 완고한 태도를 보여줄 수 있다. 또한 노인여성은 열정과 움직임이 적고, 섬겨야 할 존재로서 불편하게 인식되기도 한다. 노인여성이 어린 사람 밑에서 일하거나, 조직에서 나이든 사람을 하급자로 두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만연한데, 우리 사회가 유교문화의 ‘장유유서’라는 연령규범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여성운동, 노인여성의 참여 이끌어내야
고학력, 전문직 출신의 노인여성들은 자신들이 저학력, 가난한 노인여성과 함께 이야기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여성들은 개인의 능력이나 경력에 따라 노인이 되어서도 교육이나 임금노동의 기회를 얻고자 한다. 이들은 권익신장을 위해 노인여성을 위한 조직이나 단체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사회구조적인 성차별과 연령차별의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문제를 인식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데에는 한계를 갖고 있다.
한편, 노인여성이 전업주부로서 사적 영역에서 보살핌을 수행해왔다면, 공적 영역에서 의사소통의 방식을 훈련 받지 못했기 때문에 정치적 행위자로서 말하고 토론하는 과정에 익숙하지 않다. 이처럼 젊은 여성들보다 남성과의 관계에서 힘든 삶을 살아 왔던 노인여성들이 여성주의 관점에서 자신의 경험을 고통이나, 한(恨), 희생 등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자신의 삶을 재해석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의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
노인여성의 경험을 듣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소외되어 온 여성의 역사를 배우고 쓰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과정을 통해 노인여성은 여성주의 관점을 훈련 받고, 자신의 위치에서 임금노동이나 노인보살핌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노인여성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은 여성운동 안에서 연령차별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 주고, 나이 듦에 대한 거부감에서 벗어나 자신의 노년을 준비할 수 있게 해준다.
여성운동 역사에서는 노인여성으로서 위치를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연령의 차이를 넘어 여성간의 연대를 모색하는 투쟁이 존재해 왔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시위를 비롯해 중노년기에 있는 동일방직 해고 여성노동자의 복직투쟁이 바로 그러한 예라 할 수 있다.
노인여성에게는 젊은 여성과 동등한 인격체로서 짐을 나누어 지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다른 연령대의 여성은 노인여성이 나이 듦에 따라 다른 속도를 갖고 있고, 이동성에서 제약을 갖는다는 점 등의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 상호간 차이에 대한 이해 속에서 여성운동은 주변화된 노인여성의 억압적 경험에 귀 기울이고 노인여성을 정치적 행위자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과정은 젊은 여성들의 위치에서는 보이지 않던 문제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성찰하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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