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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털털이 노후’에 남는건 무시와 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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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06-02-11 10:36 조회 1,78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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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남편과 사별한 김모 할머니(78·서울 관악구). 남편의 죽음은 살림만 챙기던 할머니를 아무런 준비 없이 냉정한 세상으로 내몰았다. 가진 기술이나 밑천이 없던 할머니는 파출부를 전전했다. 그렇지만 하나뿐인 아들 교육만큼은 소홀하지 않았다. 없는 살림이지만 아비 없는 자식이라 흉을 보일까, 혹 자신의 가난이 그대로 물려질까봐 아들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끼니도 걸렀다.


재혼할 기회도 있었지만 포기했다. 아들만을 ‘삶의 희망’으로 삼고 모든 것을 바치며 살았다. 그런 아들은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최고 일류대학’을 졸업했다. 아들이 결혼한 뒤에도 할머니는 입주파출부 생활을 계속했다. 아들과 며느리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도리어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은 사치란 생각에 조금이라도 목돈이 생기면 아들의 사업자금에 보탰다.


그러나 할머니에게 돌아온 아들 가족의 태도는 냉담했다. 파출부도 힘에 부쳐 1년 전부터 어쩔 수 없이 아들집으로 들어갔지만 손자 앞에서 대놓고 무시당하기 일쑤다. 아들과 며느리는 아예 밥도 같이 먹으려 하지 않는다. 도리어 “더 나이 들어 병이라도 걸리면 양로원에 버리겠다”는 악담도 서슴지 않는다.


김할머니는 “지금까지 자식 하나만을 위해 내 앞으로 된 통장 하나 만들지 못하고 살았지만 이런 대우를 받으니 너무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던 부모들의 상당수가 노후에는 자식들에게 재정적·정서적 학대뿐만 아니라 신체적 학대까지 당하고 있다. 대부분의 노인들이 자신이 학대받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살고 있기에 김할머니와 같은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이같은 노인 학대의 근본 원인 중의 하나가 대부분 경제적 문제에서 시작되고 있다.


충북 청주에 사는 정모 할머니(73)의 남편은 공무원으로 정년퇴임했다. 넉넉지 않은 살림이지만 남들만큼은 공부시키려고 옷 수선 가게를 꾸려가며 3남1녀를 모두 대학에 진학시켰다. 억척스럽다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자식에게 모든 것을 헌신한 정할머니도 남편의 폭행과 자녀의 무관심에 노출되어 있다.


정할머니는 10년 전 제일 믿던 큰 아들이 교통사고로 갑자기 사망하면서 심한 자책감에 시달렸고 몇 년 전부터는 치매증세를 보였다. 이때부터 남편은 아내를 때리기 시작했다. 회사원이던 두 아들은 맏아들의 책임이던 부모 모시기가 자신들에게 넘어오는 것을 꺼리고 막내딸은 연락이 두절되다시피 했다. 특히 둘째 아들은 실직으로 이혼위기에 처하면서 가끔 보내주던 생활비마저 끊었다.


베트남 호찌민시에 사는 김모 할아버지(74)의 사연은 ‘현대판 고려장’을 연상케 한다. 사업으로 남부럽지 않은 재산을 모은 할아버지가 중풍에 걸리자 사업체를 물려받은 큰아들이 베트남 여행길에 아버지를 버렸다. 길거리를 배회하는 할아버지를 발견한 현지 교포가 자식의 처사에 분개, 서울의 큰아들을 수소문해서 매달 생활비를 부쳐 드리라고 강권했다.


현지 베트남 간병인 여성(23)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병이 완치되어 그녀와 결혼까지한 할아버지는 “자신을 버리고 갔던 아들을 생각하면 피가 끓는다. 일찌감치 사업체를 물려준 것이 화근”이라고 말했다.


충북 노인학대예방센터 김순예 실장은 “학대를 받는 어르신은 자식을 위해 노후 대비를 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자식들 또한 ‘나 살기도 바쁜데 부모까지 어떻게 모시느냐’는 경제적 부담이 부양 스트레스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실장은 이어 “자신이 노인이 됐을 때 학대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경제사정을 여유롭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학대 노인의 대부분이 병을 앓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중년 이후엔 건강에 투자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지나친 사교육비 지출은 자녀의 미래까지 망칠 수 있다.


서울 강남에 사는 안모씨(67)는 요즘 답답한 마음에 밤잠을 못 이룬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손을 벌리는 아들(35) 때문이다. 대기업 임원 출신인 안씨는 하나뿐인 아들에게 중학교부터 한달에 2백만원 이상을 쏟아부어 영어·수학은 물론 체육과외까지 시켰고 대학졸업 후에는 미국유학도 보내줬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아들은 한국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다. 회사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해 이직을 반복했고 돈이 들어오는 족족 몽땅 써버리기 일쑤였다. 안씨는 “아들이 미국 유학 비용으로 너무 많은 돈을 써 아내가 할인점 판매대에서 일한다”면서 “더이상 도와줄 여력도, 도와줄 생각도 없다”고 말했다.


재무컨설턴트업체 ‘포도에셋’의 라의형 대표(43)는 “교육비를 많이 쏟아부을수록 자녀들은 ‘부모는 나를 위해 언제든 돈을 쓸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해 나이를 먹고도 부모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며 “노후준비뿐 아니라 자녀의 장래를 위해서도 과도한 교육비 지출은 금물”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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