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에 울고 병원비에 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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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05-08-17 00:00 조회 1,601회 댓글 0건본문
"늙으니 몸덩어리가 돈덩어리" 입원 6번·수술 3번에 빈손 신세 병원 기피… 가난할수록 병도 많아
이모(88) 할아버지가 사는 곳은 서울 상도동 철거민촌의 빈집이다. 한때 전셋집(3000만원)과 1000만원 이상의 여윳돈을 가지고 있는 그가 수돗물도 나오지 않아 빗물로 식수를 대신해야 하는 이곳에 오게 된 것은 4년 전 생긴 협심증 때문이다. 6번 입원하고 3번 수술하면서 돈은 모두 사라졌고 지금은 국가보훈처에서 받는 월 10만원이 유일한 수입이다. 그는 6·25참전용사다. 아침은 건너뛰고 점심과 저녁은 급식소에서 해결하는 신세…. “죽을 때까지 밥은 굶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느닷없이 찾아온 가슴병 때문에 말년에 상거지 노릇을 하고 있다”고 이씨는 말했다.
노인들이 빈곤에 빠져드는 가장 큰 원인은 고령화와 함께 찾아오는 ‘만성질환’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2005년)에 따르면 90% 이상의 노인이 1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갖고 있었다. 3개 이상의 만성질환자도 55%나 됐다.
문제는 가난할수록 병도 더 많다는 점이다. 이 조사에 따르면 월 평균 소득 50만원 미만 노인의 65.7%가 3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앓고있다. 300만원 이상인 가구는 47.1%로 그 비율이 낮다. 그런가 하면 65~69세 노인의 9.6%, 70세 이상 노인의 11.4%는 의료적 도움이 필요한 장애자다.
생활비 빠듯한 노인들에게 병은 곧 ‘피’ 같은 돈을 말려버리는 지름길이 된다. 병원가고 검사받고 약 사서 복용하는 과정마다 교통비, 식사비 등이 소리없이 뒤따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노인이 있는 가구의 전체 지출 중 의료비 비중은 14%나 됐다. 노인이 없는 가구(5%)의 거의 3배다.
▲ 나이가 들면서 늘어가는 의료비는 저소득층 노인들의 쌈짓돈을 야금야금 갉아 먹는다. 사진은 치매에 걸려 입원요양 중인 노인들.
지난 1년간 노인 1명에게 사용된 의료비는 평균 140만 2000원(환자 본인부담은 의료비의 20~40% 수준)이었다. 그러나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질환의 검사·치료비, 건강보조식품 구입 등 비(非)의료적 지출은 본인 부담금 30만~60만원의 10배 이상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듯 치료비를 부담하던 저소득층 노인들은 심장병이나 뇌졸중, 각종 암 등 중병에 걸리기라도 하면 수술비와 입원비 때문에 한순간에 전 재산을 탕진하고 ‘알거지’로 내몰리게 된다.
심장병 때문에 1992년과 2000년 두 차례 수술을 받느라 전세금까지 날린 강모(82) 할머니도 “늙으니 몸덩어리가 돈덩어리가 됐다”며 “이제 어렵게 사는 자식들에게 손 벌릴 염치도 없어 아예 병원에 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행동하는 의사회’ 김경숙 간사는 “저소득층 노인들은 맹장염처럼 가벼운 병에 걸렸는데도 수술을 제때 받지 못해 복막염이 되고 이 때문에 사망하는 일이 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단체서 도움을 받던 지체장애 1급인 박모(72)씨는 인공골반수술 부작용으로 염증이 생기고 복수(腹水)가 찼으나 병원에 가지 않고 버티다 사망 직전에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정부는 노인요양병원 등 공적 의료시설을 연차적으로 확충하고 2007년부터는 저소득층 의료 수요의 사회적 분담을 위한 ‘노인요양보장제’도 도입하는 등 저소득층 노인의 의료수요에 대한 사회적 안전장치를 갖추겠다고 외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노인복지 예산의 전체 규모는 5005억원. 정부 예산의 0.42%로, 유럽(15% 수준), 일본(3.7%), 대만(2.9%)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최경석 교수는 “노인복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부담을 하겠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며 “노인 의료 문제 해결을 위해선 관절염이나 당뇨병 같은 만성 노인성 질환의 의료보험 급여율만이라도 대폭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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