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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여성, 죽음의 과정에 대한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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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11-30 00:00 조회 1,50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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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2005-05-31 03:54]
노인자살이 사회적 관심이 되고 있는 시점에서 그 원인과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개별가족, 특히 여성에게 보살핌의 역할을 전가함으로써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려 하던 복지정책은 고령화의 진행과 함께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청하게 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노인문제를 전통적 가치관의 붕괴나 가족해체를 원인으로 파악하면서, ‘효’를 강화해 해결하기를 주장하는 입장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노인요양보장제도의 도입은 노인보살핌 제도를 구축하는 것이므로 보살피는 입장이었던 여성에게나 보살핌을 받는 여성들에게나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제도 도입이 노인보살핌에 관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재생산노동이 제대로 평가되지 않는 상황에서 노인보살핌을 경시하는 우리의 불편한 태도를 성찰하고 노인여성의 위치를 살펴보아야 노인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될 것이다.


평생 노동의 결과가 축적되지 못해


노인여성들은 의료비를 비롯해 자원을 갖지 못했을 때 비장의 무기로 죽음을 생각한다. 자신이 다시 일어날 수 없고 그 기간이 얼마일지 짐작할 수 없을 때, 최악의 경우 자식에게 보살핌의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곡기를 끊어 서서히 죽음을 앞당기기도 한다. 이는 자연사로 위장되기도 하며, 자녀들은 어머니의 깊은 뜻을 사후에 헤아리고 눈물을 흘리며 죽음을 택한 어머니의 희생을 ‘사랑’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 같은 선택은 타자에게 최소한의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죽음을 선택할 권리’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자원이 부족한 여성들에게 보살핌이 그리 편안한 과정이 아니란 점에서 재고되어야 한다. 즉 ‘어머니’는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도 자녀를 보살펴야 한다는, 모성 이데올로기의 부정적인 결과로도 바라볼 수 있다.


평생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수행한 노동의 결과는 자신의 재산으로 축적되지 못했기 때문에, 노인여성들은 자신을 위해 의료비 내는 것조차 불편하게 생각한다. 상류층을 제외한다면 죽음에 이르는 기간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리고 자원이 한정되어 있는 상태에서, 보살핌의 비용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자녀에게 의존하는 삶이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노인들은 자살을 선택하기도 하는데, 특히 여성들은 정서적 고립상태와 경제적인 의존상태에 있게 되므로 자신을 쓸모 없는 존재로 여기게 된다. 혼자 움직이지 못하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상태에서 음식을 받아먹어야 하는 상황은 자녀에 의한 정서적, 신체적, 정신적, 언어적 학대에 노출되기 쉽게 만들기도 한다.


물론 모든 자녀가 부모가 몸져눕는다고 학대 가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양육과 같은 보살핌노동이 사회적으로 가치를 인정 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죽음이라는 “비생산적 과정”으로 가는 노인을 보살피는 사람이나 보살핌을 받는 노인이나 존중 받을 수 없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노인여성은 자녀양육, 시부모 병수발, 환자간호 등의 보살핌으로 헌신해 왔고, 노년기에도 손자녀 양육이나 남편 병수발 등의 보살핌으로 노년기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여성들은 열심히 가사와 양육에 종사할수록 가난해지고, 그것은 한편으로 노동시장의 성차별을 유지하는 과정에 동참하는 일이 되어버린다. 결국, 노인여성이 열심히 일했어도 가난하고 의존적인 존재로 비춰지는 이유는 성별분업의 불공정한 평가와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가정이 노인여성에게 평등한 곳이었나


최근에 몸 져 누운 아내를 보살피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아내와 동반자살을 한 몇몇 노인남성의 사례가 기사화됐다. 그들은 아내의 보살핌에 의존해 불편 없이 살다가, 자신이 아내를 보살펴야 하는 입장이 되자 이를 편안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보살핌을 받아야 할 자신이 타인을 보살피고 있는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가장으로서 자녀에 대한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또 아내를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아내의 죽음까지 결정할 권리를 행사했다. 열심히 일을 했음에도 언제나 일을 하지 않았다고 폄하되었던 노인여성들은 죽음의 문제에서도 결정할 권리를 갖지 못했다. 이들 사건에서 노인여성은 성인자녀의 보살핌의 대상이거나 노인남성이 책임져야 할 의존적인 존재로서 재현됐다.


그러나 노인여성은 다른 사람의 결정에 따라야 하는 무력한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위해 최선의 결정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 존재다. 또한 많은 경우 젊은 세대는 노인여성을 부양하는 존재가 아니라, 노인여성에게 의존하고 있다. 노년기에도 취업자녀를 지원하기 위한 손자녀 양육을 하고 남편의 병수발을 담당하는 등의 보살핌노동을 하고 있는 ‘생산적인’ 존재다. 노인여성이 보호해야 할 약한 존재라는 고정관념은 보살핌이 필요한 후기노인여성에게만 해당되는 것이고 평생을 보살핌을 해온 노인여성이 보살핌을 받는 것은 당연한 대가이며 권리다.


노인여성이 자녀에게 버려진 후에 길을 잃고 헤매면서도 주소와 이름을 묻는 경찰에게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어머니로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침묵하거나 자녀에게 학대 당하면서도 신고하면 가야 할 곳은 시설이기 때문에 가족이 더 낫다고 체념하지 않게 하려면, 노인문제를 가족이 일차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서 사회적 책임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가정이 노인여성에게 평등한 곳이었는가 하는 물음과 함께 노인여성의 인권이 존중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는 영역이 되려면 노인여성의 보살핌을 더 이상 개별가족의 책임에 미루어서는 안 된다. 노인여성은 더 이상 모성이라는 이름 하에 자녀에게 보살핌을 받으면서 함부로 다뤄지길 바라지 않으며 가장으로서 남편의 권위를 위해 남편과 같이 죽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노인여성의 삶이 우울한 것은 신체적 변화에서 비롯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녀에게 쏟은 만큼 보살핌을 돌려받지 못하는 부당함에 따른 것이고 평생을 보살핌에 종사하도록 강제한 성별 분리된 구조에 대한 피해의식에서 비롯한다. 이러한 분노나 피해의식은 ‘여자의 일생’ 또는 할머니의 ‘한’으로 설명하는 데에 그쳐서는 안 된다.


한 생명의 탄생을 기쁨으로 맞이하듯이, 한 사람의 죽음으로 가는 과정은 존중 받아야 한다. 여성이기 때문에 그 역할로서 해왔던 노동은 이제 자신의 삶을 마감하는 과정에서 재평가되어야 할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보살핌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소외되지 않는 여성의 삶, 이것이 노인여성의 죽음의 과정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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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이동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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