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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률 1위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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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11-30 00:00 조회 1,85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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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05-10-01 05:17]

한국의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0개국 가운데 최고라고 한다. 전체 자살자의 28.8%가 60대 이상 노인층이고, 사망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20, 30대의 경우 사망 원인 중 자살이 1위였다. 더 큰 문제는 2003년 10위에서 2년 만에 1위로 뛰어오르는 등 최근 5년간 자살률이 크게 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앞으로 그 비율이 더 늘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자살이 늘어난다는 것은 우리의 사회안전망이 무너지고 있음을 알려주는 중대한 신호다. 각박한 현실에 치여 삶의 희망을 빼앗겨 버린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자살률 통계에서 특히 ‘남성 노인층’의 자살이 두드러지는데 이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가족관계를 가장들이 감당하지 못한 때문으로 보인다. 가족을 위해 밖에서 일하는 가장이 절대적인 존경과 신뢰를 받으며, 나이 들어서는 자식들의 부양을 받고 여생을 편하게 보낸다는 공식은 무너진 지 오래다. 여기에다 최근 노인 학대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학대는 자식들의 경제력과 상관없으며 가해자는 아들, 며느리, 딸의 순이라 한다. 이 세대는 가족의 박대와 경제적 궁핍, 사회적 무관심에 맘 둘 곳을 잃어버렸다.


거의 모든 면에서 이중 잣대가 존재하는 한국에서 표면적으로 가족은 전지전능한 공동체다. 한때 가족이 안전망 구실을 하던 시대가 있기는 했다. 이를 빌미로 국가의 사회복지 정책은 저만치 멀리 떨어져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혈연의 끈끈함’이라는 아름다운 간판 뒤편에 자녀 학대, 배우자 폭력, 노인 학대 등의 문제가 숨겨져 방치되고 심지어 배양돼 왔다.


여성의 경우 집에서 자식과의 유대감을 강화해 왔고 종교단체나 지역봉사 등을 통해 이웃과 연대를 이루며 살아와 노년이 상대적으로 풍요롭고 다채로울 수 있다. 그러나 오직 직장을 위해 몸 바쳐 온 남성 가장들에게 퇴직 이후의 삶은 암담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젊은이들의 삶은 순탄한가. ‘세계화’의 부작용으로 빈부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고,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신용카드 빚 등 사회경제적으로 수렁에 빠진 계층이 늘었다. 퇴직연령이 ‘사오정’(45세 정년)에서 ‘삼팔선’(38세 퇴직)으로까지 내려와 평생직장 개념이 없어졌다. 하지만 이런 얘기는 양반에 속해 취직조차 쉽지 않다. 많은 세금과 연금을 내고 있지만 노후는 몹시 불투명하다. 이런 불안한 시대에 청운의 꿈을 품으란 말도 하기 미안하다. 핵가족 개념이 확립된 시대에 태어나 가족과의 연대도 느슨하다. 곤경에 처했을 때 자신을 잡아줄 끈이 없는 것이다. 여기에 디지털 세대의 감성이나 충동성도 한몫하는 것 같다. 불리할 때 리셋 키를 누르면 다시 게임이 시작되는 가상의 세계를 즐기는 이들이어서 현실에서도 가볍게 리셋을 시도하는 것인가.


개인의 인격, 가족의 사랑이 대신해 온 복지문제를 사회적 차원으로 끌어내야 한다. 자살 예방을 위해 국가 차원의 대책을 세우고 정부와 지역사회의 유기적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선진국들처럼 우리나라도 자살이 개인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사회와 관련된 문제라는 생각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아울러 자신의 일은 자신이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누구나 혼자라는 것을 이제 시인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개인과 국가, 제도의 사이에서 완충장치를 해온 가족공동체에 대한 기대수준을 최소화해야 할 때다. 개인도 자신의 노년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야 한다. 자식을 위해 기러기아빠 되기를 기꺼이 감수하고, 집을 줄여 과외비용을 대는 맹목적인 자식 사랑은 이제 노후 준비를 위해 냉정하게 저울질돼야 한다.


최혜실 경희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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