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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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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05-11-19 11:00 조회 1,56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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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숟가락도 제대로 못 들 만큼 쇠약했다. 수프를 입가로 식탁으로 흘리곤 했다. 아들과 가족들은 노인을 난로 뒤 구석자리로 쫓아내고 사기그릇에 음식을 떠줬다. 손을 떠는 노인이 사기그릇을 떨어뜨리자 가족은 값싼 나무그릇을 구해 밥을 담아줬다. 어느 날 네 살 난 손자가 나무를 주워 왔다. 가족들이 묻자 아이가 말했다. “여물통 만들려고요. 나중에 크면 아버지 어머니 음식 담아 드리려고요.” 그림형제의 동화 한 토막이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제 늙기 전까진 남의 일이라 여긴다. ‘내가 아직 한번도 가본 적 없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그의 세계에 침을 뱉고/ 그가 이미 추방되어버린 곳이라는 이유 하나로/ 나는 나의 세계를 보호하며/ 단 한 걸음도/ 그의 틈입을 용서할 수 없다.’ 기형도의 위악적(僞惡的)인 시 ‘늙은 사람’에서 공원 그늘에 웅크린 노인을 보는 시선은 차갑다 못해 적대적이다.

▶서울 어느 구청이 동네 공원에 있던 노인정을 헐고 2층으로 키워 짓기로 했다. 그러자 노인정과 6m 도로를 사이에 둔 주택가에서 “노인정이 ‘높아’ 조망권을 해친다”고 반대했다. 구청은 공원 다른 곳으로 터를 옮겨 공사를 시작했다. 이번엔 길 건너 60m 떨어진 아파트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다. 장애인 학교, 노인 요양병원에 이어 동네 노인정까지 ‘혐오시설’로 몰리는 꼴이다. 사회적 학대를 넘어 테러에 가깝다.

▶1980년대부터 들어선 노인정, 이른바 경로당은 이제 노인 80명에 한 개꼴, 5만 여곳에 이른다. 그러나 태반이 덩그러니 방 하나다. TV나 화투·바둑·장기가 소일거리다. 지원도 시원찮다. 얼마 전 보건복지부 장관 홈페이지에 글이 올랐다. ‘경로당 노인들이 치솟은 난방 기름값을 모으느라 화투놀이에서 개평을 뜯고 있다. 올겨울 장관실 온도를 우리 동네 경로당 온도와 똑같이 맞춰보라.’

▶유럽의 노인복지센터들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연령층을 끌어들인다. 노인들을 격리시키는 게 아니라 사람들 속에 어울리게 한다. 노인들이 가르치는 프로그램도 개발한다. 스스로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은 나이를 이기는 가장 큰 힘이다. 우리는 그나마 노인들이 따로 모이는 공간을 푸대접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손가락질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그 손가락질이 다른 사람 아닌 미래의 자신에 대고 하는 짓인데.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tjoh@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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