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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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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05-07-26 00:00 조회 1,25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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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본 수퍼마켓에선 매월 중순이면 고급 스테이크용 소 안심이 평소보다 62%나 많이 팔린다. 노인들이 이 무렵 일제히 연금을 받기 때문이다. 패밀리레스토랑 체인 ‘스카이락’은 노인들을 겨냥한 음식배달로만 한 해 2000억원 가까운 매출을 올린다. 최근 택배 서비스를 시작한 도쿄의 최고급 호텔 오쿠라 식당들의 10만원 넘는 메뉴에도 노인들 주문이 몰린다. 일본 노인들이 지갑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레저·문화 같은 고급 소비에서 두드러진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얼마전 학대받는 노인들 가운데 20%가 ‘경제적 학대’를 당하고 있다고 집계했다. 자식들이 부모 승낙 없이 재산을 멋대로 써버리거나 연금을 가로채는 경우다. 지자체들은 ‘고령자권리옹호센터’를 열어 노인들의 금전관리와 재산보호를 돕고 있다. 오랜 불황을 거치면서 일본엔 나이 들어서도 부모에 끝없이 기대는 ‘기생족’들이 폭증했다. 이런 자식들의 족쇄를 벗어나 나름대로 노후를 가꾸려는 부모들도 늘고 있다.

▶요즘 우리 금융상품 중에 ‘즉시연금’의 인기가 짭짤하다고 한다. 은퇴자들이 퇴직금이나 집 판 목돈을 맡기고 원금과 이자를 연금으로 나눠 받는 상품이다. 자식들이 손을 벌려도 당장 수중엔 아무것도 없으니 거절하기 편하다는 농담반 얘기에 세태변화가 비친다. 요즘 은퇴자들은 재산을 일찍 물려준 뒤 교통비도 없이 눈칫밥을 먹는 친구들 얘기를 너무 흔히 듣는다.

▶자식에 기댈 생각도 않지만 자식에게 송두리째 바치지도 않겠다는 부모가 많아졌다. ‘돈이 있어야 부모 대접도 받는다’는 차원을 넘어 노년을 당당하고 평화롭게 보내려 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전통적 부모상을 거부하며 부부 나름의 인생을 추구하는 ‘통크족’(Tonk·Two only, no kids)을 새로운 소비세력으로 주목했다. 아예 자식을 낳지 않는 맞벌이 ‘딩크족’(Dink·Double income, no kids)과 달리 ‘자식으로부터의 건강한 독립’을 추구한다.

▶그래봐야 한없이 약한 것이 부모 마음이다. 어느 조사에서 ‘통크족’을 원하는 60세 이상 노인이 63%에 이르렀다지만 그렇게 될 것이라고 자신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집을 잡혀 연금을 받는 ‘역(逆) 모기지’가 작년 상륙한 이래 판매실적이 300여건에 불과한 것만 봐도 우리 부모들의 본심이 뚜렷하다. ‘이 목숨 있는 동안 자식의 몸을 대신하기를 원하고, 내 죽은 뒤에는 자식의 몸을 지키기를 원한다’(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tjoh@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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