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치 혈압약을 보름만에 다 드신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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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05-07-18 00:00 조회 2,471회 댓글 0건본문
[오마이뉴스 2005-07-15 12:14]
뇌졸중으로 방 안에서만 생활하는 할머니가 한 분 계신다. 할아버지와 두 분이 사시는데 할아버지 역시 주위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다 편치 못한 분이다. 그동안 진료소에서 한 달에 한 번씩 혈압 약과 허리 아플 때 먹는 약을 가져다 드렸는데 요즘은 자꾸 문제가 생긴다. 분명히 혈압 약 한 달분을 드렸는데 한 달이 되기 전에 약이 다 떨어졌다며 전화를 하는 것이다.
처음엔 습기 때문에 약이 변할까봐 뚜껑 열기가 쉬운 작은 약병에 담아 드렸는데, 아침에 드신 것을 잊고 다음에 또 드시나 싶어서 약포지에 하나씩 싸서 드리고 약 봉투에 약을 가져가는 날짜를 크게 써드렸다. 한쪽 손이 불편해 약포지에 싸는 것이 먹기에 더 불편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하루에 한 번 먹어야 하는 혈압 약을 하루에 두 번 먹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어서 생각한 방법이다.
그렇게 드려도 한두 달이 지나고 나니 다시 약이 모자랐다. 처음엔 대엿새씩 빨리 약이 떨어졌다고 전화를 하시더니 나중엔 한 열흘쯤 일찍 전화를 하셨다. 그래서 이번에는 약포지 위에 매일 매일 날짜를 적어 드렸다. 그런데도 소용이 없나보다. 오늘 아침에 전화를 해서 혈압 약이 다 떨어졌단다. 약을 드린 지 보름쯤 되었는데 벌써 약이 다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 분들처럼 돌보는 보호자 없이 할머니와 할아버지 두 분이 방치되어 있는 경우가 참 어렵다. 1종 수급권자가 되어 생활보조금이 한 달에 얼마씩 나오는데, 두 분은 이것을 제대로 찾아 쓰지도 못한다. 멀미 때문에 버스를 타지 못하는 할아버지가 겨우 몇 달에 한 번씩 면에 있는 농협에 자전거를 타고 가시곤 했는데 요즘은 그마저도 어렵다고 한다.
이웃들에게 돈을 찾아다 달라고 부탁할 분들도 아니지만 그런 부탁을 들어줄 이웃사람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렇게 통장에 차곡차곡 모았다가 일 년에 한두 번 얼굴 보기 힘든 아들이 집에 찾아오면 한꺼번에 툭 털어주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몸이 아파도 옆에서 돌보는 가족이 없는 노인들이 시골에는 많다. 도시에도 물론 있겠지만 몸이 아플 때 병원에 간다는 것 자체가 힘든 시골에서는 그냥 방치되기 쉽다. 이웃과의 관계가 좋은 집은 가끔이나마 들여다보는 사람이라도 있지만, 이 분들처럼 이웃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경우엔 말 그대로 외로운 섬처럼 고립되고 만다.
그 집에서 급하게 약이 필요하다고 전화가 왔을 때 내가 바로 가정방문을 가지 못 할 형편일 때가 있다. 이럴 때 이웃 사람들이 마침 진료소를 찾아오면 그 집에 약을 좀 전해줄 수 있느냐고 물어볼 때가 있다. 그러면 열에 아홉은 그 집에 가기를 꺼린다. 처음 몇 번은 약을 가져다 줄 수 있느냐고 물어봤지만 지금은 그 마을 사람이 진료소를 찾아와도 아예 물어보지 않는다. 좀 늦더라도 내가 가능하면 빨리 시간을 내서 그 집을 다녀오는 게 낫기 때문이다.
이 할머니, 할아버지의 경우 보건진료소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우선 한 달에 한두 번 가정방문을 통해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필요한 약을 챙겨 드리고, 봉사활동 하는 미용실 원장님께 부탁해 할머니 머리 깎아 드린다. 또 푸드 뱅크에 연결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반찬 지원 받을 수 있게 해 드리고, 가을이면 김장김치 가져다 드린다. 봉사단체에서 대상자 소개시켜 달라는 연락을 받으면 한두 군데 연결해줘서 비정기적이나마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 드리는 게 전부다.
이밖에 생기는 하루 세 끼 밥 챙겨먹기, 화장실을 못 가고 방 안에서 볼 일을 보시는 할머니 대소변 치우기, 세탁하기, 청소하기 등 수많은 문제점은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만의 몫으로 남는다.
팔순이 넘은 할아버지가 반찬 해 먹기가 힘들었는지 어느 날 점심 때 그 댁을 찾아 갔더니 고혈압 환자인 할머니가 물에 만 찬밥과 맛소금으로 밥을 먹고 있었다. 깜짝 놀라 얘기를 들어봤더니 김치도 떨어지고 다른 반찬도 떨어져 할아버지가 그렇게 가져다 주셨다는 것이다. 그 뒤에 부랴부랴 몇 군데 연락을 해서 겨우 푸드 뱅크를 연결해서 일주일에 한 번이나마 반찬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세탁이나 청소는 봉사활동 하는 사람들이나 주변에서 도와주겠다고 해도 할아버지가 거부하고 있는 상태라 몇 년째 손을 못 대고 있다. 할머니를 돌보고 있는 할아버지 역시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자식이 나 몰라라 하는 노인들을 누군들 선뜻 나서서 병원에 모시고 갈 수 있을까. 그나마 남을 해치지는 않고 주위 사람들이 까탈스럽지 않은 시골이니까 그냥저냥 묻혀지내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혈압 약을 잘 챙겨 드시던 할머니가 자꾸 실수를 하는 걸 보면 치매가 시작되는 건 아닌지 걱정되기도 하는데 우선은 좀 더 시간을 두고 살펴볼 일이다. 이 할머니 몸은 움직이지 못하시지만 그래도 방 안에 앉아서 할아버지를 대신해 집안 살림을 그럭저럭 꾸려오셨는데 할머니가 만약 치매라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혈압약이 다 떨어진 것을 알면서도 다음에 가정방문 가기로 한 날짜까지 마냥 기다릴 수가 없어 그동안 한 달씩 드리던 혈압 약을 보름씩 나누어 드리는 게 우선은 최선일 것 같다. 커다란 달력에 약봉지를 하루씩 붙여 드릴까 생각해 보기도 했는데 이것보다는 우선 보름씩 나누어 보는 게 나을 것 같다.
노후가 제대로 준비되지 못한 노인들을 볼 때 우리는 쉽게 그 노인들을 비난한다. 젊었을 때 뭐하느라 제대로 준비도 못했느냐고 비난한다. 하지만 노후가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다 젊었을 때 잘못 산 것은 아니다. 열심히 자식 키우면서 살았어도 겨우 먹고 살기 빠듯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해 노후를 미처 준비하지 못했을 뿐이다.
살다보니 어쩔 수 없이 그런 형편에 놓이게 된 것이지 늙고 병들었을 때 그렇게 힘들게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쩔 수 없이 힘들고 어려운 노후를 보내고 있는 노인들에게 좀 더 따뜻한 시선도 필요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노인복지가 이제는 정말 제대로 시작되어야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자꾸만 뒤로 늦추기에는 지금 우리의 현실이 너무 많이 심각하다.
[오마이뉴스 이금희 기자]
뇌졸중으로 방 안에서만 생활하는 할머니가 한 분 계신다. 할아버지와 두 분이 사시는데 할아버지 역시 주위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다 편치 못한 분이다. 그동안 진료소에서 한 달에 한 번씩 혈압 약과 허리 아플 때 먹는 약을 가져다 드렸는데 요즘은 자꾸 문제가 생긴다. 분명히 혈압 약 한 달분을 드렸는데 한 달이 되기 전에 약이 다 떨어졌다며 전화를 하는 것이다.
처음엔 습기 때문에 약이 변할까봐 뚜껑 열기가 쉬운 작은 약병에 담아 드렸는데, 아침에 드신 것을 잊고 다음에 또 드시나 싶어서 약포지에 하나씩 싸서 드리고 약 봉투에 약을 가져가는 날짜를 크게 써드렸다. 한쪽 손이 불편해 약포지에 싸는 것이 먹기에 더 불편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하루에 한 번 먹어야 하는 혈압 약을 하루에 두 번 먹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어서 생각한 방법이다.
그렇게 드려도 한두 달이 지나고 나니 다시 약이 모자랐다. 처음엔 대엿새씩 빨리 약이 떨어졌다고 전화를 하시더니 나중엔 한 열흘쯤 일찍 전화를 하셨다. 그래서 이번에는 약포지 위에 매일 매일 날짜를 적어 드렸다. 그런데도 소용이 없나보다. 오늘 아침에 전화를 해서 혈압 약이 다 떨어졌단다. 약을 드린 지 보름쯤 되었는데 벌써 약이 다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 분들처럼 돌보는 보호자 없이 할머니와 할아버지 두 분이 방치되어 있는 경우가 참 어렵다. 1종 수급권자가 되어 생활보조금이 한 달에 얼마씩 나오는데, 두 분은 이것을 제대로 찾아 쓰지도 못한다. 멀미 때문에 버스를 타지 못하는 할아버지가 겨우 몇 달에 한 번씩 면에 있는 농협에 자전거를 타고 가시곤 했는데 요즘은 그마저도 어렵다고 한다.
이웃들에게 돈을 찾아다 달라고 부탁할 분들도 아니지만 그런 부탁을 들어줄 이웃사람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렇게 통장에 차곡차곡 모았다가 일 년에 한두 번 얼굴 보기 힘든 아들이 집에 찾아오면 한꺼번에 툭 털어주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몸이 아파도 옆에서 돌보는 가족이 없는 노인들이 시골에는 많다. 도시에도 물론 있겠지만 몸이 아플 때 병원에 간다는 것 자체가 힘든 시골에서는 그냥 방치되기 쉽다. 이웃과의 관계가 좋은 집은 가끔이나마 들여다보는 사람이라도 있지만, 이 분들처럼 이웃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경우엔 말 그대로 외로운 섬처럼 고립되고 만다.
그 집에서 급하게 약이 필요하다고 전화가 왔을 때 내가 바로 가정방문을 가지 못 할 형편일 때가 있다. 이럴 때 이웃 사람들이 마침 진료소를 찾아오면 그 집에 약을 좀 전해줄 수 있느냐고 물어볼 때가 있다. 그러면 열에 아홉은 그 집에 가기를 꺼린다. 처음 몇 번은 약을 가져다 줄 수 있느냐고 물어봤지만 지금은 그 마을 사람이 진료소를 찾아와도 아예 물어보지 않는다. 좀 늦더라도 내가 가능하면 빨리 시간을 내서 그 집을 다녀오는 게 낫기 때문이다.
이 할머니, 할아버지의 경우 보건진료소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우선 한 달에 한두 번 가정방문을 통해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필요한 약을 챙겨 드리고, 봉사활동 하는 미용실 원장님께 부탁해 할머니 머리 깎아 드린다. 또 푸드 뱅크에 연결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반찬 지원 받을 수 있게 해 드리고, 가을이면 김장김치 가져다 드린다. 봉사단체에서 대상자 소개시켜 달라는 연락을 받으면 한두 군데 연결해줘서 비정기적이나마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 드리는 게 전부다.
이밖에 생기는 하루 세 끼 밥 챙겨먹기, 화장실을 못 가고 방 안에서 볼 일을 보시는 할머니 대소변 치우기, 세탁하기, 청소하기 등 수많은 문제점은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만의 몫으로 남는다.
팔순이 넘은 할아버지가 반찬 해 먹기가 힘들었는지 어느 날 점심 때 그 댁을 찾아 갔더니 고혈압 환자인 할머니가 물에 만 찬밥과 맛소금으로 밥을 먹고 있었다. 깜짝 놀라 얘기를 들어봤더니 김치도 떨어지고 다른 반찬도 떨어져 할아버지가 그렇게 가져다 주셨다는 것이다. 그 뒤에 부랴부랴 몇 군데 연락을 해서 겨우 푸드 뱅크를 연결해서 일주일에 한 번이나마 반찬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세탁이나 청소는 봉사활동 하는 사람들이나 주변에서 도와주겠다고 해도 할아버지가 거부하고 있는 상태라 몇 년째 손을 못 대고 있다. 할머니를 돌보고 있는 할아버지 역시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자식이 나 몰라라 하는 노인들을 누군들 선뜻 나서서 병원에 모시고 갈 수 있을까. 그나마 남을 해치지는 않고 주위 사람들이 까탈스럽지 않은 시골이니까 그냥저냥 묻혀지내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혈압 약을 잘 챙겨 드시던 할머니가 자꾸 실수를 하는 걸 보면 치매가 시작되는 건 아닌지 걱정되기도 하는데 우선은 좀 더 시간을 두고 살펴볼 일이다. 이 할머니 몸은 움직이지 못하시지만 그래도 방 안에 앉아서 할아버지를 대신해 집안 살림을 그럭저럭 꾸려오셨는데 할머니가 만약 치매라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혈압약이 다 떨어진 것을 알면서도 다음에 가정방문 가기로 한 날짜까지 마냥 기다릴 수가 없어 그동안 한 달씩 드리던 혈압 약을 보름씩 나누어 드리는 게 우선은 최선일 것 같다. 커다란 달력에 약봉지를 하루씩 붙여 드릴까 생각해 보기도 했는데 이것보다는 우선 보름씩 나누어 보는 게 나을 것 같다.
노후가 제대로 준비되지 못한 노인들을 볼 때 우리는 쉽게 그 노인들을 비난한다. 젊었을 때 뭐하느라 제대로 준비도 못했느냐고 비난한다. 하지만 노후가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다 젊었을 때 잘못 산 것은 아니다. 열심히 자식 키우면서 살았어도 겨우 먹고 살기 빠듯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해 노후를 미처 준비하지 못했을 뿐이다.
살다보니 어쩔 수 없이 그런 형편에 놓이게 된 것이지 늙고 병들었을 때 그렇게 힘들게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쩔 수 없이 힘들고 어려운 노후를 보내고 있는 노인들에게 좀 더 따뜻한 시선도 필요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노인복지가 이제는 정말 제대로 시작되어야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자꾸만 뒤로 늦추기에는 지금 우리의 현실이 너무 많이 심각하다.
[오마이뉴스 이금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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