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3.06 SBS

<8뉴스> <앵커>
중증 치매를 앓고 있고, 생계까지 곤란한데도 국가로부터는 아무런 지원도 못받는 노인들이 상당수에 이르고 있습니다. 사정은 딱하지만, 법적 요건이 안된다는 이유입니다. 아직도 복지국가는 먼 얘기입니다.

김천홍 기자의 현장 속으로입니다. <기자>

지난 목요일 오전 10시. 올해 여든 여섯인 정병태 할아버지가 중증 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 일흔 아홉 살 고씨 할머니의 손을 꼭 잡은 채 골목길에 나타났습니다. [정병태/86세 : (손을 놓으면 할머니 못 따라오세요?) 예. 속도 모르고 사람들은 아주 여기서는 잉꼬 부부라고 아주 뭐, 아이고 참.]

부부가 찾아가는 곳은 노인 복지관. 중증 치매인 할머니에겐 하루 스물 네시간 사람이 붙어 있어야 합니다. 어쩔 수 없이 하루 5천원을 내고 6시간동안 이곳 보호센터에 할머니를 맡깁니다. [(할머니 여기 맡겨놓으신 동안에는 안심이 되시겠어요.) 안심이 되죠. 안심이 되고 말고, 또 여기서 잘해주니까...]

할아버지는 6년 전 아들이 사업에 실패하면서 평생 모은 재산을 날렸습니다. 그 뒤 할머니와 함께 친척집을 전전하다 지난 2003년 이곳에 원룸 셋방을 얻었으며 둘째딸이 매달 보내주는 30만원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복지관에 10만원 내고... 가스비, 전화세, 전기세 이것이 7,8만원 돈 10만원이나 나온단 말이야. 그거 주고 나면 내 약 값하고 하 면 쓸것이 없지 뭐. 쓸 것이. 돈이..]

답답한 마음에 가끔씩 아들 집을 찾지만 사업에 실패한 아들과는 연락이 끊긴 지 이미 오래입니다. [며느리하고 셋이 중국 가서 있는데... (중국 가서요? 그럼 연락이 안돼요?) 연락이 안돼, 나하고.]

아들을 단념한 할아버지는 지난해부터 할머니를 무료 요양시설에 보내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지금의 고생이 싫어서가 아닙니다. [내가 앞에 간다면 첫째 나 치우는 것보다도 저 사람 어디다가 관리를 맡겨야 하는데 맡길 데가 없으니까 그게 제일 한심스럽지 뭐... 한심스럽고 걱정이지.]

그러나 현재 할머니를 무료요양시설에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국가무료요양시설은 기초생활수급자들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는 부양의무자로 규정된 자식들이 있기 때문에 정부가 정하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습니다. [동사무소 관계자 : 국민기초생활법이 딱 나오니까 아들 자식이 있으면 딱 혜택을 못받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요. 그러니까 이게 법의 맹점이라고요.]

[백소영 과장/한국치매가족협회 : 바로 (기초생활)수급자들 윗 단계... 그래서 경제적 능력은 사실 없고 부양가족이 별로 없는데도 수급대상자를 받지 못하시는 분들 그 계층이 제일 문제인데 그분들이 갈 시설이 없어요.]

할아버지는 이번 겨울을 지나며 부쩍 기력이 쇠해졌습니다. 그러나 자식에게도 국가에도 아내를 맡길 수 없는 처지를 생각하면 할아버지는 행여 이 밤에라도 자신이 먼저 눈을 감을까 초조해지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