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3.09.23. 09:38  업데이트 2023.09.23. 20:42

50대 딸 A씨는 2019년 5월부터 70대 노모를 자신의 집에서 홀로 부양해왔다. 노모는 당뇨를 앓으며 기력이 쇠했지만, 스스로 밥을 챙겨 먹는 정도의 일상생활은 할 수 있었다. 외출할 때면 혼자 남은 어머니가 걱정된 A씨는 방 안에 CCTV를 달았다. CCTV와 연결된 스마트폰으로 노모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병들고 늙은 모친을 수년간 혼자 모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A씨의 어머니는 점차 거동이 불편해졌고, 식사와 용변도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워졌다. A씨에게는 다른 형제들도 있었지만, 큰 도움을 받지 못하면서 그는 점차 지쳐갔다. A씨는 작년 1월 28일부터 9일간 15회에 걸쳐 모친의 머리와 배, 가슴 등을 때리고 옷을 잡아당기는 등 학대를 벌였다.

‘노인 학대’가 이어지던 2월 2일, 노모는 A씨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가다 발이 미끄러지며 넘어졌다. A씨의 모친은 이후 혼자 걷지 못하게 됐고, 혈색도 나빠지기 시작했다. 다친 오른쪽 허벅지는 눈에 보일 만큼 점점 부어올랐다. 딸의 부축 없이는 홀로 서있기 어려울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지만, A씨는 어머니를 곧바로 병원에 데리고 가거나 119에 신고하지 않았다. 결국 모친은 사고 나흘 만인 2월 6일 새벽 숨을 거뒀다. A씨는 존속 유기치사‧학대‧폭행 등 혐의로 기소돼 법정에 섰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김옥곤)는 지난 13일 A씨의 혐의 중 15차례의 학대와 폭행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노모를 유기(遺棄)해 숨지게 한 존속 유기치사 혐의는 무죄로 판결했다. A씨가 어머니를 고의로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의 이 같은 판단에는 모친의 사망 직전 촬영된 CCTV 영상이 근거가 됐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 집 안을 비춘 CCTV 영상에는 2월 5일 밤늦게 집에 돌아온 A씨가 그제야 노모의 상태가 극심히 악화된 것을 인식하고 간호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A씨는 노모 옆에서 무언가를 속삭이다가 그의 얼굴을 쓰다듬고 껴안았고, 자정이 넘자 미음을 먹였다. 새벽 2시에도 상태가 나아지지 않자, A씨는 노모의 등과 가슴을 여러 차례 두들기고 심장 박동을 확인했다. A씨는 어머니의 곁에 누워 꼭 껴안기도 했다. 새벽 3시 30분쯤 노모의 호흡이 느껴지지 않자, A씨는 119에 신고하고 심폐소생술을 했다. 하지만 노모는 결국 숨을 거뒀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적어도 A씨가 모친의 상태가 매우 심각해졌음을 인지한 때부터는 그를 걱정하면서 나름대로의 조치를 취하고, 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해 노력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며 “고의로 노모를 방치하고자 마음먹었다면 이와 같은 행위를 했을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또 학대가 이뤄지던 기간에 A씨가 노모에게 식사와 과일을 빠짐없이 제공하고, 하루 한 번 이상 샤워를 시키며 간이 변기의 용변을 정리하는 등 기본 부양 의무를 다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A씨가 모친을 고의로 방치했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았고, 사망을 예견할 수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앞서 유죄로 판단된 A씨의 일부 학대, 폭행 행위에 대해서 재판부는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작지 않다”면서도 “거동이 불편한 모친을 홀로 부양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수반될 수밖에 없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순간 참지 못해 일어난 범행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했다. 모친의 유족 중 일부가 A씨에 대한 선처를 구하는 탄원서를 낸 것도 양형에 참작됐다. 검찰은 존속 유기치사 무죄 판결에, A씨는 학대 등 유죄 부분에 대해 항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