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인권교육엔 늦은 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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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3-09-04 11:25 조회 596회 댓글 0건본문
- 입력 2023.09.03 18:00
근 10여 년 농촌 교육을 한다며 강사로 들락댔다. 기초지자체마다 가용할 수 있는 교육비가 책정되고 농촌의 교육 대상과 범위도 넓어지는 추세다. 생활세계가 겹치는 면 단위 교육도 많아지고, 마을 단위 교육도 활발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만 교육의 질이 받쳐주는지는 냉정하게 들여다볼 일이다. 교육에 참가하는 주민들은 대체로 직책이라도 하나 맡고 있는 리더들이 많다. 보고용 사진도 잘 나와야 하고 강사 섭섭할까 싶어 공공근로를 나온 노인들이 자리를 채우기도 한다.
교육 내용은 중요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영농교육이나 직불금 관련 교육이 아닌 다음에야 농촌에서 큰 관심을 끌 만한 주제도 솔직히 많지 않다. 마을 지원금을 받으려 의무 참가를 하거나 교육 예산을 소진시켜야 할 때도 있어서 교육받으러 나오라는 연락을 매일 받다시피해 지겹다고도 한다. 농촌은 교육 전성시대다.
담당 실무자들은 노인들이 많다 보니 무조건 재미있게 강의를 해달라고 한다. ‘양해를 구한다’고도 한다. 농민들이고 책상에 앉아 남의 말을 듣는 일에 익숙하지 않으니 다소 어수선하고 돌발 상황이 벌어져도 너무 놀라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젊은 학생들도 책상에 앉으면 없던 잠도 쏟아지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당신들끼리 큰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실 때는 이를 어쩌나 싶어 당혹스럽다.
전화가 오면 그 자리에서 받는 일도 예사이고 간식과 기념품만 받아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오죽하면 주최 측은 빨리 끝내는 한이 있어도 쉬는 시간을 주지 말아 달라 한다. 이유인즉슨 쉬는 시간에 간식만 챙겨 집으로 가버리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가장 난감한 당부는 ‘조심해 달라’는 것이다. 예민한 이야기는 꺼내지 말라는 건데 농촌에서 민감한 주제란 무엇인가. 우선 정치적 발언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농정 문제에서 정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빼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싶지만 눈치껏 두루뭉술하게 처리한다. 정치 문제뿐만 아니라 농촌 내의 불평등 문제도 민감하다. 예를 들어 농촌의 성폭력 문제나 부정부패, 차별 문제 말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단 하나의 문제는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젊은 여자가 마이크를 쥐고 가르치려 든다는 그 행위 자체가 마뜩잖거나 낯설기 때문이다. 전문 강사로 투입된 교육이지만 ‘시집은 갔느냐’, ‘애는 낳아 봤느냐’라 놀려 먹기도 하고 질끈 묶은 생머리를 보고는 ‘파마 값을 주겠다’, ‘머리를 올려 줘야 하는 거냐’ 등 희롱에 가까운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그래서 교육 시작 전에 성인이 된 딸이 있는 ‘나이배기’라 하고 ‘입틀막(입 틀어막기의 줄임말)’을 해버리는 전략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농촌에 자주 드나든 개인적 차원의 대응일 뿐 공적 대응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계가 뚜렷하다. 하다못해 도시권의 관공서 단체 행사 전엔 ‘성희롱 예방교육’이나 ‘직장 내 괴롭힘방지교육’ 영상을 시청하기도 하는데 농촌 관공서에서는 이런 영상조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비록 요식행위로 느껴질 수도 있으나 이런 시도조차 이뤄지지 않으니 농촌의 인권교육의 갈 길이 멀다. 한계가 많더라도 농촌의 특성에 맞는 예방교육은 이뤄져야 한다.
교육 내용은 중요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영농교육이나 직불금 관련 교육이 아닌 다음에야 농촌에서 큰 관심을 끌 만한 주제도 솔직히 많지 않다. 마을 지원금을 받으려 의무 참가를 하거나 교육 예산을 소진시켜야 할 때도 있어서 교육받으러 나오라는 연락을 매일 받다시피해 지겹다고도 한다. 농촌은 교육 전성시대다.
담당 실무자들은 노인들이 많다 보니 무조건 재미있게 강의를 해달라고 한다. ‘양해를 구한다’고도 한다. 농민들이고 책상에 앉아 남의 말을 듣는 일에 익숙하지 않으니 다소 어수선하고 돌발 상황이 벌어져도 너무 놀라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젊은 학생들도 책상에 앉으면 없던 잠도 쏟아지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당신들끼리 큰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실 때는 이를 어쩌나 싶어 당혹스럽다.
전화가 오면 그 자리에서 받는 일도 예사이고 간식과 기념품만 받아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오죽하면 주최 측은 빨리 끝내는 한이 있어도 쉬는 시간을 주지 말아 달라 한다. 이유인즉슨 쉬는 시간에 간식만 챙겨 집으로 가버리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가장 난감한 당부는 ‘조심해 달라’는 것이다. 예민한 이야기는 꺼내지 말라는 건데 농촌에서 민감한 주제란 무엇인가. 우선 정치적 발언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농정 문제에서 정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빼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싶지만 눈치껏 두루뭉술하게 처리한다. 정치 문제뿐만 아니라 농촌 내의 불평등 문제도 민감하다. 예를 들어 농촌의 성폭력 문제나 부정부패, 차별 문제 말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단 하나의 문제는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젊은 여자가 마이크를 쥐고 가르치려 든다는 그 행위 자체가 마뜩잖거나 낯설기 때문이다. 전문 강사로 투입된 교육이지만 ‘시집은 갔느냐’, ‘애는 낳아 봤느냐’라 놀려 먹기도 하고 질끈 묶은 생머리를 보고는 ‘파마 값을 주겠다’, ‘머리를 올려 줘야 하는 거냐’ 등 희롱에 가까운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그래서 교육 시작 전에 성인이 된 딸이 있는 ‘나이배기’라 하고 ‘입틀막(입 틀어막기의 줄임말)’을 해버리는 전략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농촌에 자주 드나든 개인적 차원의 대응일 뿐 공적 대응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계가 뚜렷하다. 하다못해 도시권의 관공서 단체 행사 전엔 ‘성희롱 예방교육’이나 ‘직장 내 괴롭힘방지교육’ 영상을 시청하기도 하는데 농촌 관공서에서는 이런 영상조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비록 요식행위로 느껴질 수도 있으나 이런 시도조차 이뤄지지 않으니 농촌의 인권교육의 갈 길이 멀다. 한계가 많더라도 농촌의 특성에 맞는 예방교육은 이뤄져야 한다.
마을회관에서 이뤄지는 가장 중요한 일은 함께 먹는 일이다. 그중 ‘마을공동급식’의 경우 만족도가 가장 높은 농촌사업으로 독거노인들의 외롭고 부실한 식사에 대한 대안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뜻 좋은 이 일도 자연스럽게 ‘여자들의 일’이 돼버렸다. 그래서 공동급식의 부담을 떠맡게 된 여성들은 아예 ‘밥차’가 제공되고, 마을행사에는 뷔페를 불러 여성들도 함께 먹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전남 지역의 한 마을회관에서 농사일로 바쁜 주민들이 모여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촌의 인권은 마을회관 앞에서 멈춘다, 마을회관의 민주주의를 향하여
강연장의 독특한 풍경 중 하나가 누가 시킨 적도 없건만 앞자리에는 남성들이, 뒷자리에는 여성들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는 것이다. 수강생 입장에서는 앞자리가 불편하기 마련이어서 뒷자리를 좋아하지만 농촌의 나이 지긋한 남성들은 평생 그래왔듯 앞자리에 앉는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그렇게 ‘남녀칠십세부동석’이 마련되곤 한다.
농촌에서 마을회관은 주민들의 거점 커뮤니티 시설이다. 공동식사나 놀이, 학습문화 프로그램이 마을회관을 통해 이뤄지며 주요 정보도 마을회관을 통해 오고 간다. 다만 고령의 주민들이 다수이다 보니 마을회관이 곧 노인정이 돼버렸지만 본래 모두의 마을회관이어야 한다.
마을회관 혹은 노인정엔 ‘할아버지방’, ‘할머니방’이 따로 마련돼 있다. 본래는 ‘남자방’, ‘여자방’이어야 하지만 워낙 고령의 노인 주민들이 많다 보니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할아버지, 할머니방으로 부르게 됐다. 식사나 공동의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거실은 함께 공유해도 내외하는 문화에서 허리라도 펴고 눕자면 성별로 나뉜 방이 필수다.
대개의 농촌마을이 그렇듯 여성노인들이 남성노인들보다 훨씬 더 많다. 90년대 전후에 지은 비교적 오래된 마을회관은 큰방과 작은방의 개념으로 지어진 경우가 있는데 작은방이 할머니방이 됐다. 본래 작은 방을 여자방으로 정하라 한 적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할머니들 스스로 작은 방을 찾아 들어간 것이다.
좁은 방에 할머니들이 모여 불편하게 지내는 것이 보기 딱해 널찍한 할아버지 방과 맞바꾸자는 제안을 마을 이장이 했더니 외려 할머니들이 절대 안 된다며 펄쩍 뛰더란다. 이유는 분란 만들지 말고 조용히 지내는 것이 편하다는 이유였다. 이장님의 마을회관 민주주의 프로젝트는 그렇게 좌절되고 말았다.
마을회관에서 이뤄지는 가장 중요한 일은 함께 먹는 일이다. 그중 ‘마을공동급식’의 경우 만족도가 가장 높은 농촌사업으로 독거노인들의 외롭고 부실한 식사에 대한 대안으로 부상했다. 연구자들이 이 농촌의 공동식사에 주목을 해왔고, 사회는 점점 늙어 가고 먹거리돌봄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므로 그 모범을 마을공동급식에서 찾으려 했다.
하지만 뜻 좋은 이 일도 너무 자연스럽게 ‘여자들의 일’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공동급식뿐만 아니라 복날 행사나 동지팥죽 행사 등 마을 행사에 음식을 마련하는 일은 오래도록 부녀회를 비롯한 마을 여성들의 전담이었다. 마을공동급식 현장을 보면 밑재료 준비나 상차림과 뒷정리를 돕는 일이 ‘할머니’들에게는 익숙한 일이다.
그런데 그보다는 젊어 보이는 남성 노인들은 뒤로 빠져 있다가 상이 차려지면 그제야 숟가락을 드는 일 역시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래서 공동급식의 부담을 떠맡게 된 여성들은 아예 ‘밥차’가 제공되고, 마을행사에는 뷔페를 불러 여성들도 함께 먹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충남 서천의 한 마을은 더 이상 부녀회장 지원자도 없고 알량한 지원금도 반납한 뒤 부녀회를 해체했다. 한데 그다음부터 마을 남성들이 설거지를 하고 조리 노동에도 참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가용자원이 부족하던 시대에 농촌의 마을공동체를 굴러가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자치기구는 부녀회였지만 농촌의 성별분업체제를 더욱 공고하게 만든 측면도 분명하다.
그래서 아예 부녀회를 해체하고 고정된 성역할에 대한 기대를 흩어버려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본래 마을회관은 마을 주민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어야 하지만 나이와 성별에 따른 위계의 공간이기도 하다. 여기에 경제적 처지에 따른 위계도 작동하는 불평등한 공간이다.
특히 돌봐주는 가족들이 없고 혼자 어렵게 살아가는 초고령 독거노인의 경우 눈치가 보여 마을회관 출입을 꺼리거나 의도적으로 배제되기도 한다. 마을회관 관리를 명분으로 열쇠를 쥔 관리자가 회관에 누구는 받아들이고 누구는 배제하는 전략을 쓰며 마을의 여론을 왜곡하기도 한다. 어려운 형편에 물질적인 보탬도 어렵고 노동력을 보탤 처지가 아닌 경우 스스로 발길을 끊거나 주민으로서의 정당한 권리행사는 아예 꿈도 꾸지 못한다.
농촌은 원래 그런 곳인가, 배움에는 때가 없다
성별과 나이, 인종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것을 ‘인권침해’라고 한다. 이런 차별이 농촌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농촌에서 더 심한 것은 분명하다. 농촌은 원래 그런 곳이고 노인들에게 아무리 떠들어봤자 소용없다는 ‘자포자기의 문화’가 강하다. 그래서 농촌 현장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교육 주제도 인권이다. 농촌에서의 성차별의 문제를 제기하고 성평등한 농촌사회를 만들자고 하면 ‘요즘은 여자들 세상이다’라고 반발한다.
여기에 한국 농업은 외국인이주노동자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고, 거주 환경을 개선하고 함께 주민으로 살아갈 방도를 찾아보자는 제안도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많다. 오히려 농민들이 이주노동자들 눈치를 얼마나 보는 줄 아느냐며 현실도 모르면 입을 다물라는 항의를 받은 적도 있다. 농촌의 형편은 나날이 팍팍해지는데 농민들의 인권은 보장하지도 않으면서 가해자로 취급하느냐는 것이다. 이해를 구하려다 서로 오해를 하고 만 것이다. 준비 없이 급한 마음에 어설프게 지른 탓이 크다.
다만 먹고살기 바쁘고 노인들이 많다는 ‘현실적’인 이유에 갇혀 그동안 농촌에서 인권과 민주주의 교육은 뒷전이거나 시도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데 농촌에서 이뤄지고 있는 성인문해교육(한글교실)의 사례를 통해 배움에는 때가 없다는 것을 알지 않았는가. 평생 읽고 쓸 줄 몰라도 농사짓고 살림하는 데에 아무 문제 없었지만, 할머니들이 읽고 쓸 줄 알게 되면서 맞이한 세계는 그 이전의 세계와는 완전히 달라졌듯 인권교육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방법을 배우고 내가 당한 서러움도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귀한 교육과정이다.
2018년 노인복지학회의 <농촌노인 인권수준 개선을 위한 질적 연구>를 보면 농촌 노인들의 인권에 대한 인식은 ‘내가 대접받는 일’, ‘나한테 잘해주는 것’ 정도의 이해다. 물론 그동안 농사를 지어 이 사회를 먹여 살린 노고에 대한 고마움을 인정하고 대접도 해야 한다. 하나 여기에 더 나아가 나이와 성별, 인종, 경제적 차이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는 시민적 권리가 있고 타인의 권리도 존중해야 한다는 인권의 기본 문법과 문해교육이 작동한다면 농촌은 오히려 인권교육을 통한 인권존중 문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한국의 농촌은 한국 사회가 거쳐야 할 모든 과정을 먼저 겪거나 겪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와 지역 과소화 문제를 이미 오래전부터 경험해 왔다. 대면사회에 가까워 외지인들에 대한 경계도 높고 갈등도 있지만 어울려 함께 살아갈 방법을 민관 모두 골몰하는 곳이다.
2021년 발표된 <억제효과분석을 활용한 도시노인과 농촌노인의 인권지식, 인권민감성, 연령차별의 차이에 관한 연구>를 보면 농촌은 노인 인구가 다수여서 외려 늙어가는 스트레스가 도시에 비해 덜하며, 노인 존중과 돌봄의 문화가 있다. 여기에 이민이라도 받아들여 국가의 규모를 유지하려는 이때 국제결혼과 이주노동을 통해 다양한 이주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30년 전부터 부대끼고 살아온 경험도 풍부하다.
농촌의 삶은 앞으로 한국 사회가 모두 거쳐야 할 삶이다. 농촌의 이러한 좌충우돌의 경험과 과정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대안을 만들어 간다면 이 사회는 농촌으로부터 배워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와 방법을 가르치고 익히는 인권교육은 때와 장소, 사람을 가리지 않아야 하며 농촌도 열외일 수 없다.
출처 : 한국농정신문(http://www.ikpnews.net)
농촌의 인권은 마을회관 앞에서 멈춘다, 마을회관의 민주주의를 향하여
강연장의 독특한 풍경 중 하나가 누가 시킨 적도 없건만 앞자리에는 남성들이, 뒷자리에는 여성들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는 것이다. 수강생 입장에서는 앞자리가 불편하기 마련이어서 뒷자리를 좋아하지만 농촌의 나이 지긋한 남성들은 평생 그래왔듯 앞자리에 앉는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그렇게 ‘남녀칠십세부동석’이 마련되곤 한다.
농촌에서 마을회관은 주민들의 거점 커뮤니티 시설이다. 공동식사나 놀이, 학습문화 프로그램이 마을회관을 통해 이뤄지며 주요 정보도 마을회관을 통해 오고 간다. 다만 고령의 주민들이 다수이다 보니 마을회관이 곧 노인정이 돼버렸지만 본래 모두의 마을회관이어야 한다.
마을회관 혹은 노인정엔 ‘할아버지방’, ‘할머니방’이 따로 마련돼 있다. 본래는 ‘남자방’, ‘여자방’이어야 하지만 워낙 고령의 노인 주민들이 많다 보니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할아버지, 할머니방으로 부르게 됐다. 식사나 공동의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거실은 함께 공유해도 내외하는 문화에서 허리라도 펴고 눕자면 성별로 나뉜 방이 필수다.
대개의 농촌마을이 그렇듯 여성노인들이 남성노인들보다 훨씬 더 많다. 90년대 전후에 지은 비교적 오래된 마을회관은 큰방과 작은방의 개념으로 지어진 경우가 있는데 작은방이 할머니방이 됐다. 본래 작은 방을 여자방으로 정하라 한 적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할머니들 스스로 작은 방을 찾아 들어간 것이다.
좁은 방에 할머니들이 모여 불편하게 지내는 것이 보기 딱해 널찍한 할아버지 방과 맞바꾸자는 제안을 마을 이장이 했더니 외려 할머니들이 절대 안 된다며 펄쩍 뛰더란다. 이유는 분란 만들지 말고 조용히 지내는 것이 편하다는 이유였다. 이장님의 마을회관 민주주의 프로젝트는 그렇게 좌절되고 말았다.
마을회관에서 이뤄지는 가장 중요한 일은 함께 먹는 일이다. 그중 ‘마을공동급식’의 경우 만족도가 가장 높은 농촌사업으로 독거노인들의 외롭고 부실한 식사에 대한 대안으로 부상했다. 연구자들이 이 농촌의 공동식사에 주목을 해왔고, 사회는 점점 늙어 가고 먹거리돌봄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므로 그 모범을 마을공동급식에서 찾으려 했다.
하지만 뜻 좋은 이 일도 너무 자연스럽게 ‘여자들의 일’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공동급식뿐만 아니라 복날 행사나 동지팥죽 행사 등 마을 행사에 음식을 마련하는 일은 오래도록 부녀회를 비롯한 마을 여성들의 전담이었다. 마을공동급식 현장을 보면 밑재료 준비나 상차림과 뒷정리를 돕는 일이 ‘할머니’들에게는 익숙한 일이다.
그런데 그보다는 젊어 보이는 남성 노인들은 뒤로 빠져 있다가 상이 차려지면 그제야 숟가락을 드는 일 역시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래서 공동급식의 부담을 떠맡게 된 여성들은 아예 ‘밥차’가 제공되고, 마을행사에는 뷔페를 불러 여성들도 함께 먹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충남 서천의 한 마을은 더 이상 부녀회장 지원자도 없고 알량한 지원금도 반납한 뒤 부녀회를 해체했다. 한데 그다음부터 마을 남성들이 설거지를 하고 조리 노동에도 참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가용자원이 부족하던 시대에 농촌의 마을공동체를 굴러가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자치기구는 부녀회였지만 농촌의 성별분업체제를 더욱 공고하게 만든 측면도 분명하다.
그래서 아예 부녀회를 해체하고 고정된 성역할에 대한 기대를 흩어버려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본래 마을회관은 마을 주민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어야 하지만 나이와 성별에 따른 위계의 공간이기도 하다. 여기에 경제적 처지에 따른 위계도 작동하는 불평등한 공간이다.
특히 돌봐주는 가족들이 없고 혼자 어렵게 살아가는 초고령 독거노인의 경우 눈치가 보여 마을회관 출입을 꺼리거나 의도적으로 배제되기도 한다. 마을회관 관리를 명분으로 열쇠를 쥔 관리자가 회관에 누구는 받아들이고 누구는 배제하는 전략을 쓰며 마을의 여론을 왜곡하기도 한다. 어려운 형편에 물질적인 보탬도 어렵고 노동력을 보탤 처지가 아닌 경우 스스로 발길을 끊거나 주민으로서의 정당한 권리행사는 아예 꿈도 꾸지 못한다.
농촌은 원래 그런 곳인가, 배움에는 때가 없다
성별과 나이, 인종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것을 ‘인권침해’라고 한다. 이런 차별이 농촌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농촌에서 더 심한 것은 분명하다. 농촌은 원래 그런 곳이고 노인들에게 아무리 떠들어봤자 소용없다는 ‘자포자기의 문화’가 강하다. 그래서 농촌 현장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교육 주제도 인권이다. 농촌에서의 성차별의 문제를 제기하고 성평등한 농촌사회를 만들자고 하면 ‘요즘은 여자들 세상이다’라고 반발한다.
여기에 한국 농업은 외국인이주노동자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고, 거주 환경을 개선하고 함께 주민으로 살아갈 방도를 찾아보자는 제안도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많다. 오히려 농민들이 이주노동자들 눈치를 얼마나 보는 줄 아느냐며 현실도 모르면 입을 다물라는 항의를 받은 적도 있다. 농촌의 형편은 나날이 팍팍해지는데 농민들의 인권은 보장하지도 않으면서 가해자로 취급하느냐는 것이다. 이해를 구하려다 서로 오해를 하고 만 것이다. 준비 없이 급한 마음에 어설프게 지른 탓이 크다.
다만 먹고살기 바쁘고 노인들이 많다는 ‘현실적’인 이유에 갇혀 그동안 농촌에서 인권과 민주주의 교육은 뒷전이거나 시도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데 농촌에서 이뤄지고 있는 성인문해교육(한글교실)의 사례를 통해 배움에는 때가 없다는 것을 알지 않았는가. 평생 읽고 쓸 줄 몰라도 농사짓고 살림하는 데에 아무 문제 없었지만, 할머니들이 읽고 쓸 줄 알게 되면서 맞이한 세계는 그 이전의 세계와는 완전히 달라졌듯 인권교육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방법을 배우고 내가 당한 서러움도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귀한 교육과정이다.
2018년 노인복지학회의 <농촌노인 인권수준 개선을 위한 질적 연구>를 보면 농촌 노인들의 인권에 대한 인식은 ‘내가 대접받는 일’, ‘나한테 잘해주는 것’ 정도의 이해다. 물론 그동안 농사를 지어 이 사회를 먹여 살린 노고에 대한 고마움을 인정하고 대접도 해야 한다. 하나 여기에 더 나아가 나이와 성별, 인종, 경제적 차이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는 시민적 권리가 있고 타인의 권리도 존중해야 한다는 인권의 기본 문법과 문해교육이 작동한다면 농촌은 오히려 인권교육을 통한 인권존중 문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한국의 농촌은 한국 사회가 거쳐야 할 모든 과정을 먼저 겪거나 겪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와 지역 과소화 문제를 이미 오래전부터 경험해 왔다. 대면사회에 가까워 외지인들에 대한 경계도 높고 갈등도 있지만 어울려 함께 살아갈 방법을 민관 모두 골몰하는 곳이다.
2021년 발표된 <억제효과분석을 활용한 도시노인과 농촌노인의 인권지식, 인권민감성, 연령차별의 차이에 관한 연구>를 보면 농촌은 노인 인구가 다수여서 외려 늙어가는 스트레스가 도시에 비해 덜하며, 노인 존중과 돌봄의 문화가 있다. 여기에 이민이라도 받아들여 국가의 규모를 유지하려는 이때 국제결혼과 이주노동을 통해 다양한 이주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30년 전부터 부대끼고 살아온 경험도 풍부하다.
농촌의 삶은 앞으로 한국 사회가 모두 거쳐야 할 삶이다. 농촌의 이러한 좌충우돌의 경험과 과정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대안을 만들어 간다면 이 사회는 농촌으로부터 배워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와 방법을 가르치고 익히는 인권교육은 때와 장소, 사람을 가리지 않아야 하며 농촌도 열외일 수 없다.
출처 : 한국농정신문(http://www.ikp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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