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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폭염에 폭우까지…유난히 힘들었던 파고다 노인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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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3-09-11 10:55 조회 58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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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3.09.03 08:00


지난달 28일 오전 11시30분께 서울 종로에 위치한 파고다 공원. 전날에 이어 연달아 내린 비에 최고 온도가 26℃까지 낮아지면서 한 노인이 옆에 앉은 다른 노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파고다 공원 정문 오른편에는 무채색의 우산들이 일렬로 줄을 서서 무료 급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10분이 지나자 급식을 다 먹은 노인들이 도시락을 받기 위해 줄을 서면서 우산줄은 정문 왼편으로 길어졌다. 오후 12시 우산줄이 사라진 파고다 공원 정문에는 처마 밑에서 한 노인이 받아 온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공원 뒤편에는 비에 젖어 매끈해진 장기판에서 신중하게 말을 옮기는 백발의 노인과 이를 구경하려 우산을 쓴 노인들이 있었다. 


다소 습하지만 더위가 한풀 꺾인 날씨에 박모 할아버지는 "한숨 놨다"는 반응을 보였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에 따르면 지난 5월20일부터 8월28일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온열질환자는 2672명, 추정 사망자는 31명이었다. 온열질환자 수가 최근 5년간 가장 많이 발생한 것이다. 같은 기간 동안 2022년에는 1503명, 2021년 1338명, 2020년 1009명, 2019년 1799명으로 집계됐다. 올해 발생한 온열질환자 중 65세 이상은 29.9%(799명)를 차지했다. 우산을 쓰고 간이의자에 앉아있던 김계석 할아버지(76)는 "더울 때 나오면 어지럽기도 했다"며 허허 웃었다. 


올여름 지나치게 많이 내린 비도 노인들에겐 고충이었다. 최근 5년간 7월을 비교했을 때 최다 강수일수, 최대 강수량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22일 오후 5시께 퍼붓는 비에 파고다공원은 물이 가득 찼다. 정문으로는 물이 울컥울컥 넘치기도 했다. 공원 관리인이 장비로 맨홀 뚜껑을 열자 욕조 배수 마개를 뽑은 듯 물이 빨려 들어갔다. 그 시각까지도 파고다공원 안 정자에는 노인들이 여럿 앉아있었다.


궂은 날씨에도 노인들은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김 할아버지는 "비가 오고 해가 뜨고 상관없이 매일 나온다"며 "혼자 집에 있으면 김치에 밥 해 먹는 게 다인데 여기 오면 든든하게 한 끼를 먹을 수 있으니까"라고 했다. 박찬철 할아버지(86)도 "집에 있으면 심심하기만 하니까 더워도, 비가 와도 온다"며 "점심에 도시락을 주니까 한 끼 먹고 가는 것"이라고 했다.


파고다공원 이외에 마땅히 갈 공간을 찾지 못한 것도 이유였다. 지팡이를 짚고 송파구에서 매일 이곳에 온다는 70대 박모 할아버지는 "주변에서 올림픽공원에 가라는 얘기도 많이 하는데 거기는 노인들이 없다"며 "이곳에 오면 나처럼 다리가 불편한 사람도 있고, 같이 그런 얘기도 나누면서 위안을 얻는다"고 했다. 김 할아버지도 "내가 사는 동네도 모임 같은 게 있을 것 같은데 알지도 못하고 알아보기도 품이 든다"며 "다 이리(파고다공원)으로 온다"고 했다.


그래도 노인들은 이제 시원해질 일만 남은 날씨에 안도감을 드러냈다. 박찬철 할아버지는 "오늘은 진짜 시원하다"며 "이젠 좀 날씨가 괜찮아질 것 같다"고 했다. 대원각사비를 보호하기 위해 쳐놓은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던 박 할아버지는 그곳에서 한참을 있다가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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