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 인생3막 기업 > 할머니들이 만든 반지로 MZ 사로잡은 '알브이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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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3-08-17 10:25 조회 569회 댓글 0건본문
입력2023.08.17 06:10
지난 8일 찾은 서울 서대문구 ‘알브이핀’ 사무실. 미팅룸에 들어서자 한쪽에 실로 만든 팔찌와 반지 등 수공예품들이 늘어선 모습이 보인다. 경상북도 상주에 살고 있는 할머니 약 40명이 한 땀 한 땀 만든 장신구다. 장신구들은 알브이핀의 브랜드 ‘마르코로호’의 제품들로, 가수 아이유, 배우 박보검·정해인 등 유명 연예인들이 착용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소비자들에게 알려져 인기를 끌었다.
할머니들이 만든 제품을 구매하려면 색상과 개수뿐만 아니라 한 가지를 더 골라야 한다. 바로 ‘기부 영역’이다. 독거노인 우유배달, 학대 피해 아동 지원, 소방관 복지증진, 위기동물 구조 지원, 플라스틱 문제 해결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신봉국 알브이핀 대표(34)는 “고객이 제품을 구매할 때마다 생기는 수익금 일부가 기부되는 모델”이라며 “고객이 선택한 기부 분야에 기부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순수익금의 20% 이상이 기부된다.
알브이핀은 지난 2016년 신 대표가 교사 의원면직 후 창업한 사회적기업이다. 수공예품 제작 일거리를 제공해 할머니들이 돈을 벌 기회를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기부로까지 연결한다. 이 과정을 통해 할머니들은 '도움받아야 하는 약자'에서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주체'로 거듭난다.
소셜 벤쳐기업 알브이핀(RVFIN) 신봉국 대표.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창업 전에는 교사였다고?
▲맞다. 교대 졸업 후 초등학교 교사로 5년 정도 일했다. 아버지가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학교에서 일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교사라는 직업을 택했던 것 같다. 교사라는 직업 자체는 좋았다. 아이들이랑 어울리는 일이 행복했다. 당시 학생들과 지금도 연락한다. 다만 교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업무 범위가 너무 좁다고 생각했다.
군대에 가서 전역 후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독서를 많이 했는데, 당시 인기가 많았던 ‘탐스 슈즈’ 같은 소셜벤처에 대한 책을 많이 접했다. 나도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을 만들고 싶었다. 의원면직을 한다고 할 때 어머니가 많이 우셨다. 다만 나도 마음의 준비를 오래 하고 내린 결정이라 확고했다.
-왜 할머니들과 일하겠다고 결심했나.
▲처음에는 내 전문성을 살려 아동 관련 사업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다 우리나라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노인 자살률이 압도적인 1위라는 뉴스를 접하고 관심이 생겼다. 특히 우울증이나 빈곤율 수치 면에서 여성 노인이 더 문제더라. 여성 노인 문제를 비즈니스로 풀어보자는 결심이 섰다.
-할머니들에게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이유는 뭔가. 이 일을 한다고 경제적 자립이 가능할 만큼 벌기는 어려울 텐데.
▲돈을 번다는 의미도 있지만, 할머니들에게 사회 활동에 참여할 기회가 생기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여성 노인이 처한 어려움 중 제일 큰 2가지가 ‘빈곤’과 ‘소외’다. 2016년 창업 후 8년째 할머니들을 만나보니 후자를 해결하는 게 더 중요하더라. 할머니들은 본인보다는 가족이나 타인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압박이 컸던 세대다. 자아를 챙길 기회가 없이 살아왔기 때문에 함께 사는 사람이 없으면 소외감을 더 많이 느낀다. 그런 상황에서 홀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우울증을 겪을 수도 있다. 여럿이 함께 할 수 있는 일거리가 생기면 친목을 도모할 네트워크가 생겨 혼자 있는 시간이 줄어들지 않겠나.
-비즈니스 모델은 어떻게 정했나.
▲당초 '할머니와 함께하는 동화구연' 같은 서비스 사업을 고민했다. 그러다 대부분의 할머니가 이미 갖고 있는 손재주를 살려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내 고향이 경북 상주라서, 상주시청의 연계로 상주 시내 노인복지기관과 노인정을 찾아가 할머니들을 직접 만났다. 먼저 팔찌 제작 교육을 해드리고,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해 사업성을 판단했다. 당시 크라우드펀딩으로 100만원 정도 팔릴 거라고 예상했는데, 10배 이상의 금액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게 시작점이 돼 지금까지 오게 된 거다. 약 40명의 할머니가 한달에 4번 정도 작업한다.
-인수한 브랜드도 있다고.
▲지난 2020년 디자인 브랜드 '크래프트링크'를 인수했다. 남아메리카 원주민 여성을 고용해 수공예 상품을 만드는 공정무역 브랜드다. 주문이 들어가면 마을 전체가 움직인다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수공예품을 한달 만에 1만~2만개씩 대량 생산할 수 있다. 마르코로호를 통해 여성 노인의 빈곤·소외 문제에 주목하다 저개발국가 여성의 일자리 창출에도 관심 갖게 돼 인수했다. 같은 수공예품이지만, 마르코로호 제품은 구매자가 대부분 20대 여성인 반면 크래프트링크 제품은 구매자 남녀 비율이 거의 같고 30대도 많다.
-매출 규모는 어떻게 되나.
▲작년에 15억원이었고, 올해 20억원 정도를 예상한다. 보통 매출에서 마르코로호가 절반을, 크래프트링크가 30% 정도를 담당한다.
-장기적인 계획이 있다면.
▲사업 영역을 계속 키워나가고 싶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프롭’이라는 브랜딩 에이전시를 운영 중이다. 다른 스타트업의 브랜드 디자인과 온라인 판매를 돕기 위해 시작했는데, 브랜딩 자체를 해달라는 제안이 많이 와서 사업으로 키웠다. 올해 상반기에 12개 스타트업의 브랜드 컨설팅과 아이덴티티 설정 작업을 도맡아 했다.
-할머니들과 일하며 시니어 문제에 대해 느낀 점이 있다면 알려달라.
▲우리 사회는 노인을 복지의 시각에서 바라본다. 그러다 보니 '복지성 일자리'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일자리를 위한 일자리 말이다. 주체가 아닌 잉여 인력으로 보는 관점에서 만드는 일자리다. 물론 국가 차원에서는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시장에 있는 사업가들은 다르게 봐야 한다. 노인 문제는 시장에서 관심 가질 정도로 커졌다. 노인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끊임없이 고민한다면 시장에서 지속가능한 사업으로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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