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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코 없는 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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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3-08-14 10:28 조회 57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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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8.13 


자꾸 눈길이 간다. 길고 큰 코로 인해 붙여진 이름일 텐데 …. 높이가 3m나 되는 코끼리조형물 어디에도 코끼리의 상징인 코가 없다. 코 없는 코끼리라니, 끼리라 불러야 하나.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 어느 작가의 ‘코 없는 코끼리’가 조형물로 전시되었다. “코끼리한테는 코가 가장 크고 중요하잖아요. 때로는 중요한 것이 없어진 후에야 비로소 다른 것들을 볼 수 있죠” 작품에 대한 작가의 설명이다. 다른 전시작품들과 다르게 직접 만져볼 수도 있도록 한 것도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봐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몇 년 전 남아프리카 크루거 국립공원에서 실제로 코가 없는 새끼 코끼리가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코가 없는 새끼코끼리의 모습은 낯설고 안타까웠다. 동물전문가들은 어떤 연유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덫이나 다른 동물의 공격으로 코를 잃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코를 잃은 코끼리가 야생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높지 않을 것이다. 코끼리는 코를 이용해서 먹이를 먹을 뿐 아니라 냄새를 맡으며 다른 개체들과 상호작용을 한다. 그런데 손과 다름없는 코가 없으니 무리와 친밀한 관계를 구축할 수 없을 것이고, 그들에게서 밀려나게 되면 다른 포식자들의 공격을 받을 위험도 커질 수밖에 없다.

다행히 잘린 코의 상처는 잘 아물었고 건강 상태도 양호하다고 했다. 아마도 다른 코끼리들이 번갈아 음식을 먹여주고 돌보아주지 않았을까 싶다. 약육강식의 야생에서 코를 잃은 코끼리는 다른 개체들에 비해 힘든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었을 새끼 코끼리에게 무리 구성원들의 보살핌이 어쩌면 생존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지난해에 사회복지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장애인복지시설에서 실습한 적이 있었다. 정신장애와 정신박약, 지적 장애인을 수용하여 돌보는 기관이었다. 이들의 대부분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단순한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혼자서는 밥조차 먹지 못하는 장애를 안고 있었다. 그러함에도 수용자들 대부분은 버려졌거나 가족을 찾을 수 없고, 가족이 있어도 보살필 수 있는 형편이 못 된다고 했다. 정신장애를 가진 이들의 일상은 신체적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보다 훨씬 더 결핍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올해로 큰어머니의 연세가 백 세다. 큰댁의 오빠는 몇 해 전 홀로된 노모만 남겨두고 먼저 세상을 떠났다. 하나 남은 딸도 여든이 된 데다 건강이 좋지 않아 큰어머니를 돌볼 처지가 못 된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식사며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큰어머니는 그나마 반나절씩 재가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식사며 기본적인 일상생활만 영위하고 있다. 혼자 스스로 남은 인생을 살아갈 수 없는 큰어머니의 삶도 코 없는 코끼리와 흡사한 것 같아 안쓰럽기가 그지없다.

인간의 삶도 신체적 장애나 정신적 장애로 인한 결핍은 인간존엄성을 위협받기도 한다. 당당한 늑골로 각을 세웠던 젊음은 소나기처럼 지나가 버리고 구멍이 숭숭 뚫어진 헝겊 같은 심신의 노화는 치명적인 결핍이다. 곳간에 거미줄은 삭아서 헐렁해지고 시난고난한 한숨의 시간이 이어지는 빈곤한 삶은 코 없이 생존을 위협받으며 살아가는 코끼리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언니와 남동생이 요양원과 요양병원에서 일한다. 동생은 종합병원에서 행정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다 얼마 전 규모가 제법 큰 요양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환자들이 많아 몇백 개의 병상이 모자랄 정도란다. 그중에는 다행히 혼자서 기본적인 일상생활이 가능한 환자도 있지만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으면 거동조차 힘든 노인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언니가 몸담고 있는 요양원은 숨 다져 걸었던 삶들이 쭉정이로 흩어지는 순장의 풍습 같다. 입소자 중에는 기억창고 한 귀퉁이가 녹아내리면서 이 행성에서 저 행성으로 떠도는 어르신이 여럿이다. 끝끝내 움켜쥐고 있다 속절없이 놓아버린 망각이 차라리 홀가분했을까. 한여름 배롱나무의 붉은 꽃보다 명징했던 기억은 허락 없이 망실忘失 되어 숟가락질이며 생리현상마저 잊어버리게 했다. 그들의 가엾고 애처로운 결핍은 코 없는 코끼리가 다른 개체의 도움 없이는 생존하기 어려운 것처럼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결코 생명을 보존하기조차 힘들 지경이다.

결핍은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사회적약자라는 말과 함께 노령화, 고령화라는 말이 쟁점이 된 지 오래다. 사회적약자를 보호하는 복지정책과 복지시설이 생겨나고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로 하여 도움을 주고자 하는 정책적 대안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코를 잃은 새끼 코끼리가 위태로운 야생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건 다른 코끼리들의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약자의 결핍을 보완하여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하는 것이 대안이 아닐까 싶다.

코 없는 코끼리를 쓰다듬는다. 장애가 안고 있는 근원적 결핍에 대해 근시안적 편견으로부터 한 걸음 나아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결핍은 단지 불편할 뿐이라 생각한 내 편협했던 양심에 코끝이 간질간질해진다.

큰 귀를 펄럭이며 눈웃음을 짓는 끼리. 그는 지금 어떤 생각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까. 큰 눈에 온기가 전해온다.

김지희 수필가


출처 : 경북도민일보(http://www.h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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