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 지방소멸에 맞서다 > ⑫ 집배원들, '위기가구' 318가구를 찾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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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3-07-31 11:08 조회 604회 댓글 0건본문
송고시간2023-07-31 07:00
부산 영도구, 집배원들 활용한 '복지등기 사업'으로 위기가구 발굴
집배원이 배달하며 '위기 징후' 포착하면, 구청서 심층면접·복지 지원
"기존 인구 지켜내는 '인구 지키기' 정책도 중요"…전국 지자체로 확산 중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 "최영희 씨∼, 최영희 씨 계십니까?"
이달 6일 부산 영도구 청학동의 한 골목길에서 부산 영도우체국 김대민(39) 집배원은 대문을 연신 두들기며 최영희(70대·가명) 씨를 불렀다.
벨을 몇차례 누르면서 불러대자 "누구세요"라며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르신, 저는 우체국 집배원입니다. '복지등기'를 배달왔습니다."
집배원의 말에 집 대문이 빼꼼히 열리며 최씨가 손을 밖으로 내밀었다.
김 집배원은 구청에서 보낸 등기 우편물을 건네고 서명을 받으면서 붙임성 있게 최씨에게 말을 건넸다.
"어르신, 요즘 생활하시는 데 어려움은 없으십니까?"
집배원의 따뜻한 목소리에 최씨는 잠시 멈칫하더니 대문을 좀 더 열고 집배원의 눈을 마주 봤다.
"건강은 괜찮으시고요?"
집배원의 질문이 이어지자 최씨는 "고혈압이 있다"고 말문을 열더니 "걱정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김 집배원은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동안 열린 문틈 사이로 내부를 빠르게 훑었다.
그러면서 손에 들고 있던 PDA 단말기에 무엇인가를 빠르게 표기해 나갔다.
해당 단말기 속에는 방금 김 집배원이 어르신에게 건넨 질문들과, 관찰해야 할 목록이 담겨 있었다.
관찰 항목은 '집주변에 악취가 나는가', '벌레가 보이는가', '집 앞에 우편물 독촉장 압류 등 우편물이 많이 있는가', '집주변에 쓰레기가 또는 술병이 많이 쌓여있는가' 등이었다.
김 집배원은 꼼꼼하게 질문을 하면서 관찰 항목에 모두 '아니오'를 표시한 뒤 "어르신 건강 잘 챙기십시오"라는 따뜻한 인사를 남기고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음 집으로 향했다.
◇ '복지등기', 위기가구 발굴의 첨병이 되다
'복지등기'는 부산 영도구와 영도우체국이 손을 잡고 지난해 7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행한 제도다.
영도구는 노인인구 비율이 전국 특·광역시 중 두 번째로 높은 '초고령 자치구'다.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중은 무려 30.1%에 달한다. 50대 이상 인구 비율은 57.37%로, 주민 절반 이상이 50세가 넘었다.
한때 중소 조선사들이 밀집해 지역경제를 호령했던 곳이지만, 조선업이 침체하면서 젊은 층이 대거 빠져나갔다. 현재 인구는 10만8천여명이다. 40년 전의 반 토막으로 줄었다.
교통 인프라마저 열악해 부산 16개 구·군 중 인구감소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인구 지키기'가 절체절명의 과제로 떠올랐다는 얘기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인구소멸로 젊은 사람이 떠나고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주민 빈곤으로 이어지는 것은 전형적인 '인구감소의 악순환'"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악순환이 있는 곳에서 빈곤 악화나 고독사 등을 막고 위기가구를 발굴해 지켜주는 것은 '인구 지키기' 차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인구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영도구는 두 달마다 복지부로부터 800건이 넘는 위기가구 정보를 전달받는다.
복지부는 '단전·단수', '건강보험 체납', '아파트 관리비·통신요금 장기체납' 등 총 39종류의 위기 징후를 살피다가 특이점을 발견하면 관할 지자체에 통보한다.
하지만 구내 위기가구 대상자가 많아 기존 공무원 인력만으로는 일일이 확인이 어려웠다.
이에 지역 곳곳을 발로 누비면서 주민들을 자주 대면하는 집배원들을 '제2의 복지공무원'으로 활용하도록 한 것이 복지등기 사업이다.
영도구는 복지부로부터 통보받은 가구 중 매월 첫째 주와 셋째 주에 100가구씩 선별해 복지등기를 보낸다.
등기는 집배원이 우편 수신인을 직접 만나 서명을 받아야 하는 배달 상품이라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낸 것.
집배원들은 등기 계약에 따라 대상 가구를 두 번 이상 방문하고, 그래도 부재중일 경우에만 등기를 안내된 곳에 내려놓고 온다.
집배원이 현장에서 위기가구를 만나 얘기를 나누고 관찰한 내용은 PDA 단말기를 통해 바로 구청으로 전달된다.
전달된 내용 중 심각한 상황이 확인되면 구 행정복지센터가 직접 심층 면접을 나간다. 대상자와 만나 현 상황에 맞는 복지 제도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연결해 준다.
집배원이 대상자를 만나지 못하더라도 '만나지 못했다'는 내용만으로도 훌륭한 정보가 된다.
'부재중이 잦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다른 방식으로 연락을 취해 공무원이 헛걸음하는 경우를 줄이고, 면접의 효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 집배원들, '위기의 사람들'을 찾아내다
단칸방에서 사는 80대 김삼주(가명) 씨는 자녀가 있지만 거의 왕래가 없어 홀로 고독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소득이 없어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만, 자녀들의 소득이 있다는 이유로 그동안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
무뚝뚝한 성격의 김씨는 그동안 통장이나 공무원들이 "생활은 괜찮으시냐"고 물어도 그저 "괜찮다"고만 답할 뿐 속내를 털어놓지 않았다.
이런 김씨에게 위기 징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통신 요금 장기체납'과 '건강보험료 체납' 때문이었다.
구는 올해 2월 김씨에게 복지등기를 발송했고, 집배원은 집 앞에서 지팡이를 짚고 앉아 있는 김씨를 만날 수 있었다.
"어르신 힘든 건 없으세요?"
평소 얼굴을 자주 보던 집배원이 말을 건네자 우두커니 앉아 있던 김씨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늙으면 안 아픈 데가 있나. 병원비가 많이 나와서 힘들지…"
김씨의 얘기는 집배원의 PDA 단말기에 입력됐다.
집배원으로부터 사연을 전해 들은 구청 행정복지센터는 직원들을 보내 김씨를 심층 면접했다.
그 결과 김씨가 최근 치아 문제로 식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병으로 인한 잦은 병원 방문으로 경제적 부담감을 느끼고, 고독감으로 무기력증도 겪고 있었다.
이에 구는 부드러운 음식인 영양죽을 보내주고, 고독감 해소를 위해 주 1회 안부 전화 서비스를 지원했다.
경제적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도록 민간 복지관 등으로부터 일상용품 등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김수연 영도구청 복지정책과 팀장은 "어르신께서는 복지 서비스 제공자들이 '자식보다 낫다'고 표현하기도 했다"며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겠다고 의지를 보이는 등 긍정적인 변화를 보여주고 계신다"고 근황을 전했다.
홀로 자녀 3명과 모친을 부양하는 40대 여성 이정희(가명) 씨도 최근 복지등기의 덕을 봤다.
이씨의 위기 징후가 포착된 건 '건강보험료 체납' 때문이다. 영도구는 올해 1월 이씨에게 복지등기를 보냈다.
그러나 집배원이 세 차례 넘게 이씨의 집을 방문해도 안타깝게도 이씨를 만날 수 없었다.
대신 집배원은 '집주변에 우편물이 많이 쌓여있다'는 위기 징후를 구청에 전달했다.
구청은 이씨를 만나 심층 면접을 하기 위해 다양한 시간대에 걸쳐 집중적으로 이씨를 찾아갔다.
결국 수차례 방문 끝에 이씨를 만날 수 있었고, 어려운 사정을 듣게 됐다.
이씨는 주 소득원이었던 남편과 지난해 이혼하면서 부정기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었지만, 생활비가 빠듯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선뜻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하지 못하고 혼자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알게 된 영도구는 이씨에게 긴급 복지를 지원하고, 맞춤형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영도구청 박은영 주무관은 "기초생활 수급 등의 요건을 확인해 이씨에게 맞춤형 급여를 지원했다"며 "자녀들에게 쌀, 라면, 우유, 간식 등의 후원품이 들어올 수 있도록 민간 서비스도 연결했다"고 밝혔다.
복지등기 우편
◇ 위기가구 318곳 찾아내다…"전국으로 확산 중"
영도구는 지난해 7월부터 복지등기를 배달하기 시작해 올해 6월까지 모두 2천304가구에 발송했다.
그 결과 지원이 필요한 318곳의 위기가구를 발굴했고, 이들에게 366건의 복지 서비스를 연계하고 지원했다.
구체적으로는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 지원 54건, 기타 공공서비스 지원 97건, 민간 서비스 연계 등이 215건이다.
집배원의 '만나지 못했다'는 정보를 받아 실거주지 전입 상황 등을 파악한 32가구도 있다. 병원에 장기 입원한 사람에 대한 정보도 21건 파악할 수 있었다.
집배원들의 동참으로 복지 공무원의 업무 부담은 줄었고, 현장업무 시 집중도도 높아졌다.
박은영 주무관은 "집배원들은 주민을 항상 대면하고 동네나 이웃도 잘 알다 보니 대상자들이 마음을 잘 열고 얘기한다"며 "어떤 주민들은 공무원에게 느껴지는 '관공서 문턱'이 느껴지지 않아 더 편하다는 말씀도 한다"고 전했다.
복지등기 사업의 이런 효과가 알려지면서 전국 곳곳의 다른 지자체로 제도가 확산하고 있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시절 인수위원회에도 복지등기 사업이 '찾아가는 복지행정 서비스 모델'로 보고돼 주목받았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2022년 지자체 인구감소 대응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도 수상했다.
지금은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8개 부처가 합심해 '스마트복지안전공동체추진단'을 구성, 이 사업을 전국 50여 개 지자체로 확산하고 있다.
박봉철 부산연구원 인구영향평가센터장은 "인구정책의 핵심이 인구를 늘리는 것에만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청년이 사라지고 노인이 많아지는 인구구조를 받아들이고 현재 거주하는 사람들이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의미에서 기존 인구를 지키기 위한 영도구의 복지등기 서비스 사업은 매우 고무적이라는 얘기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인구감소의 속도를 늦추고 지금의 인구를 지켜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인구정책"이라며 "'도심형 인구소멸' 지역인 영도구가 지역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자신들만의 해법으로 잘 해결해 나가는 사례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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