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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김서형의 압도적 명연기만으로도 볼 의의 충분한 '비닐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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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3-07-21 11:28 조회 59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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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3.07.21 09:50 

알고 싶지 않지만 외면할 수 없는 고령화사회 '돌봄' 문제 제기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다. ‘자연인’으로 산속에 틀어박혀 살지 않는 이상 모든 인간은 사회로부터, 다른 인간으로부터 돌봄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게 된다. 영화 ‘비닐하우스’(감독 이솔희)는 돌봄의 대상과 돌봄의 주체 사이 얽혀 있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영화의 주인공은 한순간의 선택으로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는데, 그 일련의 사건들이 무척이나 끔찍한데도, 나와 무관한 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말했듯이 모든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문정(김서형)은 비닐하우스에서 산다.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 화옥(신연숙)과 시력을 잃은 화옥의 남편 태강(양재성)을 보살피는 요양보호사로 일한다. 남편은 없지만 소년원 출감을 앞둔 아들이 있고, 치매에 걸려 병원에 있는 엄마도 있다. 그러니까 문정은 자신의 엄마를 돌보고 출감 후 함께 살게 될 아들을 돌보기 위해 타인인 태강-화옥 부부를 돌보며 돈을 버는 처지다. 

경제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문정을 돌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은커녕 일상에 지쳐 돌아온 문정을 안정적으로 감싸줄 집이라는 공간도 없다.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 문정은 스스로를 학대한다. 느닷없이 자신의 뺨을 때리고, 머리를 마구잡이로 후려갈긴다. 스스로를 돌보는 것보다 스스로를 학대하는 것이, 자칫 정신을 놓기 쉬운 이 막막한 현실에서 즉각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진=㈜트리플픽쳐스 
사진=㈜트리플픽쳐스

문정의 비극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법한 한순간의 사고로 시작된다. 자식도 그럴 수 없을 만큼 살뜰하게 챙기지만 화옥은 시시때때로 문정에게 욕설을 하고 구타를 가했다. 목욕을 시켜주는 문정에게 침을 뱉는 등의 ‘말썽’은 부지기수.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돌발적으로 일어난 화옥의 말썽은 문정의 비극의 시초다. 실수였으나 화옥이 죽었고, 문정이 119에 신고를 하려던 찰나에 아들의 전화가 걸려온다. 그간 엄마를 외면하던 아들이 소년원 출감 후엔 엄마와 함께 살고 싶다는 전화다. 문정은 그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해버린다. 화옥의 죽음을 은폐하고자 한 것. 

영화는 주인공인 문정의 피폐한 삶을 보여주지만 문정과 얽혀 있는 다른 사람들의 삶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문정에게 매사 따스하게 대하는 젠틀한 매너의 태강은 치매를 앓는 아내에다 노년에 시력을 잃은 자신의 처지로 문정의 돌봄 없이는 일상이 가능하지 않은 상황. 그러던 와중 자신마저 치매 초기 단계라는 청천벽력 같은 판정을 받는다. 문정이 심리상담 치료 모임에서 만나게 된 순남(안소요)은 또 어떤가. 지적장애 여성인 순남의 삶이 문정 이상으로 녹록지 않다는 것은, 자신을 돌보는 선생님으로부터 폭력과 성 착취를 당한다는 사실로 알 수 있다. 

누구의 삶도 쉽지 않은 가운데, 문정의 선택으로 인한 소용돌이가 커진다. 앞을 보지 못하는 태강을 속이고자 문정은 자신의 엄마 춘화(원미원)를 화옥 대신 태강의 집에 들어 앉힌다. 아무리 앞이 보이지 않는다지만 태강이 춘화에게서 낯선 분위기를 느끼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태강이 치매 판정을 받음으로써 그 낯섦은 당연한 것이 되고, 나아가 절망이 되어 태강에게 어떤 선택을 강요하게 만든다. 

‘비닐하우스’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은 외면하고 싶을 만큼 끔찍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가능할 법한 드라마틱한 일이 아니라 당장이라도 나에게, 내 주변에게 일어날 법한 일이기 때문에 지극히 현실적인 공포감을 선사한다. 어린 자식과 늙은 부모를 돌보는 사람이라면 문정을, 아픈 가족을 돌보는 사람이라면 태강의 심정을,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공감할 수는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이 없는 관객이더라도 마찬가지. 인간은 누구나 늙는다. 누구나 문정이, 화옥이, 태강이 될 것이다. 오래지 않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들이닥칠 일이다. 

이 지극한 현실적 공포감을 극대화하는 존재는 단연 김서형이다. 김서형이 연기 잘하는 것이야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지만, 근래의 김서형은 더욱 놀랍다. ‘아내의 유혹’ ‘샐러리맨 초한지’ ‘SKY 캐슬’ 등 일명 ‘쎈캐(센 캐릭터)’로 대중에게 잘 알려진 김서형이지만, 그의 진가는 표면으로는 압도적이지 않은 캐릭터에서 조용한 몰입감을 일으키는 데서 목격할 수 있다. 2014년작인 영화 ‘봄’에서도 그랬고, 최근작인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의 죽어가는 아내 다정, 위태로운 벼랑 끝에 서서 시청자의 마음을 저밋하게 만들었던 ‘종이달’의 유이화가 그랬다. ‘비닐하우스’의 문정은 김서형 스스로 “피하고 싶은 여자”라고 설명하며 “나는 얼마나 더 아픈 역할을 만나야 할까 하는 안쓰러움이 들었다”고 회고한 인물이다. 피폐한 삶을 하루하루 감내하며 자신을 학대하면서도, 아프고 약한 이들을 돌볼 때는 바보같이 보일 만큼 진심인 이 여자를, 김서형은 놀라운 몰입감으로 구현해낸다. 김서형의 연기를 만나는 것만으로 이 영화를 보는 의의가 충분할 정도다. 

순남 역의 안소요도 눈에 밟힌다. ‘더 글로리’에서 학교폭력 피해자 경란을 맡아 눈도장을 찍었던 안소요는 ‘비닐하우스’에서도 금방이라도 무슨 일을 저지를 것만 같은 불안정한 순남을 소화하며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비닐하우스’는 보고 나면 나와 주변,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게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메신저의 역할도 톡톡히 해낸다. 출산율은 낮아지고 고령화가 가속화되는 이 사회에서, 우리에게 미구에 닥칠 문제를 직시하라는 메시지를 무겁게 전달하는 영화다. 피하고 싶었으나 문정을 받아들였던 김서형처럼, 우리도 돌봄에 대해 진지하게 들여다볼 기회가 되어줄 것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제15기 장편제작 연구과정 작품으로, 이솔희 감독의 장편 데뷔작.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CGV상, 왓챠상, 오로라미디어상 3관왕을 수상했다.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00분, 7월 26일 개봉. 

출처 : 아이즈(ize)(https://www.iz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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