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당장 먹고 살 돈 급해”… 3개월 초단기 계약직 뛰어드는 6070 < 심층기획-실버 푸어 시대 경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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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3-07-19 11:20 조회 609회 댓글 0건본문
입력 : 2023-07-19 06:00:00 수정 : 2023-07-18 19:00:53
(1회) 일터 못 떠나는 노년들
이력서 낼 수 있는 곳 많지 않아 경비·택시운전 등 업종으로 몰려
급여 최저임금 수준에 그치지만 노인들 “나이 생각하면 만족한다”
언제든 ‘쉬운 해고’ 놓일 수 있어 일부는 계약 연장 놓고 노심초사 사회보장제 통한 노후 지원 한계 안정적 노인 일자리 공급 나서야
70대 A씨는 7년 전부터 서울 용산구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 A씨는 경비업무를 하기 전 30여년간 도소매 개인 사업장을 운영했다. 자영업자로서 A씨 삶은 경제적으로 여유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여유는 지속되지 못했다. 사업을 접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 경비업무가 눈에 들어왔다.
A씨가 경비원이라는 직업을 택한 데는 별다른 이유는 없다. 어느덧 65세가 넘은 A씨가 이력서를 낼 수 있는 일자리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파트 경비원이 된 뒤 생활은 빠듯해졌다.
1년짜리 계약직 신분이 되면서 사업할 때 몰던 차는 처분해야 했다. A씨는 “그나마 다른 아파트에서 일하는 또래 경비원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처우가 낫다는 것에 위안을 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격일로 24시간 당직을 서야 하는데, 수입이 예전보다 크게 줄었다”며 “나이를 생각하면서 (이 정도 월급이라면 괜찮다는) 만족 아닌 만족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씁쓸하게 웃었다.
A씨 사례는 초고령사회로 치닫고 있는 한국 사회 노년층의 평범한 자화상이다.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노후 대비에 소홀한 노년층이 이전까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저임금 일자리로 내몰리고 있다. A씨처럼 고령기 ‘보릿고개’는 퇴직 후 국민연금 같은 공적 연금을 수령하기 전까지 소득 크레바스(공백기)로 여겨졌다. 하지만 가파른 물가 상승 속에 연금의 사회 보장성까지 낮아지면서 노인들 생활은 갈수록 빠듯해지고 있다. 국가의 사회보험이나 공적급여 같은 공적 지원 규모가 다른 주요국보다 열악한 상황에서 노인들을 위한 안정적인 일자리 공급이 긴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임금 일자리 몰리는 60대
현행 노인복지법상 노인 연령 기준은 65세다. 하지만 노동시장에서 65세는 여전한 현역이다. 18일 국회미래연구원의 ‘정년 제도와 개선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경제활동인구가 노동시장에서 퇴직하는 나이는 72.3세이다. 정년이 60세까지로 돼 있지만 은퇴 이후 10여년간은 더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노인들이 주된 일자리를 떠난 뒤 향하는 곳은 주로 경비원이나 택시기사처럼 노동 강도가 약하면서 임금 또한 낮은 일자리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전국의 26만9000여명 경비원 연령을 조사했더니 평균 63.9세로 나타났다. 70세 이상 비중은 29.1%에 달했다. 노인들은 진입 장벽이 낮은 일자리에 몰리고, 고용주는 사회보험 부담이 없는 65세 이상을 채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저임금 일자리에는 단기 계약직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쉬운 해고’ 역시 만연해 있다. A씨는 “아파트 경비원들은 항상 계약을 연장할 수 있을지 노심초사한다”며 “1년 계약직은 그나마 나은 편이고 3개월이나 6개월 단위로 쪼개 계약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원청업체나 주민들에게)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옷을 벗어야 하는 처지”라고 토로했다. 그는 “요새는 이런 일자리도 경쟁이 워낙 치열해 공고가 한 번 나면 10명씩 찾아온다”고 전했다.
노인들이 저임금 일자리로 내몰리는 것은 당장의 생계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젊어서 사업을 했던 B(74)씨는 퇴직 이후 단순노무직에 종사하고 있다. 평생 가족을 위해 일했지만 퇴직 후 계속해 나가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직업전선으로 다시 뛰어들었다. 한때 사장님 소리를 들었던 그가 현재 받고 있는 월급은 최저임금 수준에 불과하다. B씨는 “지금도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크게 불만이 없다”며 “일할 의지와 체력이 충분함에도 지금 부족한 것은 일할 기회”라고 하소연했다.
최근 고용패널조사 학술대회에서 오태희 한국은행 과장과 이장연 인천대 교수의 발제에 따르면 한국 고령자의 평균소득은 정년 즈음한 58세 월 평균 311만원이었다. 하지만 정년 이후인 68세에는 180만원으로 42%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노인들 일자리의 안정성이 은퇴 전후 크게 떨어지고 급여 수준 또한 다른 연령대에 비해 낮다는 것을 방증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의 ‘고령 저임금 근로자의 노동공급 분석’ 보고서를 보면 2020년 기준 국내 60∼64세 임금근로자 중 월 소득이 166만7000원을 넘지 않는 저임금 근로자 비중은 33.2%에 달한다. 전체 연령대 평균(20.3%)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인 1950∼1960년대생이 포함된 점을 감안하면, 이들 퇴직 이후 공적연금 미수령 연령대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대로 일할 기회 제공해야”
노인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노후의 건강 상태다. 이런 염려는 노동시장에도 작용해 노인들의 직업 선택의 폭과 고용 안정성을 떨어뜨린다. 서울 서초구 법원 청사에서 잡초 뽑는 일을 하고 있는 C(71)씨는 원래 남편과 함께 식품회사에 다녔다. 남편이 가진 기술로 부부가 분업을 하는 형태였는데, 15년 전 남편이 지병을 앓기 시작하면서 회사를 관두게 됐다.
C씨가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뙤약볕 아래 쭈그려 앉아 잡초를 뽑는 대가로 받는 급여는 최저임금 수준에 불과하다. C씨는 “급여는 시급으로 계산해서 받고 있는데, 생활비로 쓰고 나면 남는 돈은 없다”면서 “넉넉한 생계비는 아니지만 일이 그렇게 힘들지 않아서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년층 일자리 안정을 위해서는 단순노무직 위주에서 벗어나 다양한 종류의 양질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 중평이다. 신세돈 숙명여대 명예교수(경제학)는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사실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아도 한 달간 꾸준히 일하면 급여 수준이 나쁘지 않다”며 “문제는 노인 일자리 상당수가 근무시간이 짧은 단순노무직이라는 데 있다”고 진단했다.
정순돌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도 “노인들의 일자리가 저소득층에 타깃을 맞춰지면서 저임금 일자리로 좁혀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정 교수는 “이런 형태의 의존적 일자리가 아닌 노인들이 시장에서 제대로 일할 기회를 주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설명했다. 이어 “파트타임이라도 본래 일했던 영역에서 일하고, 정부가 만든 것이 아닌 시장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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