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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10종 이상 약 먹는다? 그중 하나는 100% 부작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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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3-06-28 10:18 조회 60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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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3.06.28. 03:00  업데이트 2023.06.28. 07:42 


그래픽=박상훈 

그래픽=박상훈 


버스로 여러 시간이 걸리는 한 소도시에서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처방전만 한 움큼 들고 70대 후반 여성 A씨가 찾아왔다. 지난 1년간 자택 근처뿐 아니라 서울의 병원 등에서 의사를 적어도 10명 만난 이력이 있었는데, 최근 투약 목록을 점검해 보니 다섯 의사에게 20종 가까운 약을 처방받았다. 어지럼증, 소화불량, 수면 장애, 요실금, 기억력 저하 등에 대한 약이었다. 식욕이 없어 체중이 계속 빠지고 있었고, 최근에는 기력도 많이 떨어지기 시작한 그의 진료 이력을 종합해 보면, 수면 장애와 어지럼증이 잘 치료되지 않으면서 약이 늘기 시작했다. 이후 점차 기억력이 떨어져 새로운 약이 추가돼 요실금과 소화불량이 생겨난 것으로 보였다. 그렇게 약이 쌓이고, 외출이 어려운 것은 물론 집 안의 일상생활까지 점점 힘들어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약이 쌓이는 현상을 ‘처방 연쇄(prescribing cascade)’라고 한다. A씨가 어지럼증으로 복용하는 약은 특히 노인에게 변비와 기억력 저하를 일으킬 수 있는 약이었다. 이렇게 노인에게 사용하는 경우 바라는 약제 효과에 비해 부작용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욱 커서 주의하기를 권고하는 약을 ‘노인 부적절 약제’라고 한다. 우리나라처럼 주치의가 없으며 환자가 스스로 어떤 의사를 찾아가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의료 환경에서 이런 부작용을 경험한 환자는 앞서 어지럼증약을 처방한 의사와 의논하기보다는 변비와 기억력 저하에 대해서 진료하는 의사를 찾아가는 경우가 많다. A씨가 기억력 저하에 처방받은 약의 잘 알려진 부작용에는 요실금과 소화불량, 어지럼증이 있다. 이렇게 증상과 부작용이 돌면서 약이 쌓여간 것이다. 때로는 이 악순환으로 잘 걷던 어르신이 불과 몇 달 만에 침대에 몸져 눕는 와상(臥牀) 상태가 되기도 한다. 개별 진료엔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도, 여생을 누군가의 간병을 받으며 지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약 문제는 공중 보건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픽=박상훈 

그래픽=박상훈 

처방 연쇄가 만들어낸 문제를 해결하는 최우선 방법은 6하 원칙에 따라 이 현상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확인한 뒤 악순환을 반대로 풀어내는 것인데, 이를 노인의학에서는 ‘탈처방’이라고 한다. 모든 경우에 성공적 탈처방이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치료 목표 설정, 충분한 면담과 함께 환자 및 환자 가족의 높은 이해가 동반되면 약도 줄이고 전반적인 컨디션도 상당히 개선되는 경우가 있다. A씨는 결과적으로는 이 과정이 성공적이지 못했다. 계속 서울로 진료를 받으러 오기가 어려운 거리에 있었고, 사는 곳 주변에는 주치의 역할을 하며 약을 점검해줄 의사가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결국 수정된 처방안을 제안해 드리는 선에서 진료를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만난 지 1년 정도가 지난 뒤 A씨는 다시 진료실을 찾았다. 안타깝게도, 약 개수는 더욱 늘어있었고 처방 조정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전반적 컨디션은 더 나빠졌다. A씨가 새로 방문한 다른 큰 병원에서도 약을 전체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권고를 받았다. 하지만 그 조언은 반영되지 않았다. 결국 새로운 증상이 생길 때마다 약은 늘어갔다.

우리나라의 노년층은 약을 많이 먹는다. 2021년 OECD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의약품을 5종 이상 3개월 이상 꾸준히 복용하는 노인 비율은 70.2%였다. 이는 OECD 평균 46.7%보다 훨씬 높다. 이전 통계인 2013년의 67.2%에 비해서도 높아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기저 만성 질환 종류가 늘어나기에 먹는 약도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약물을 10종 이상 60일 이상 복용하는 이의 비율은 65~74세에서는 6.91%였고, 75~84세에서는 14.57%였다. 85세 이상에서는 15.74%로 더 높았다. 65세 이상 전체 인구 중에서는 10.26%였다. 노인 의학에서는 보통 10종 이상의 약제를 복용하는 경우 부작용이 적어도 한 가지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100%라고 본다. 병이 많고, 또 깊어서 약의 개수가 자연스레 늘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A씨 같은 경우도 분명히 있다. 각각의 진료 과목을 맡은 전문의들도 성인 의학 관점에서는 개별 증상에 대하여 교과서적 진료를 수행했다. 하지만 A씨에게는 처방력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진료 방향을 조정해 줄 의사가 없었다. 병이 많고 호소하는 불편이 많은 환자를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치료 계획을 수립한다 해도 의사가 받는 진료 수가는 3분 진료와 다르지 않다. 이는 노인 진료 시스템을 질병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바꾸려 노력하는 해외의 흐름과도 반대다.

복잡하게 꼬인 노년 환자의 의학적·기능적 문제를 정리하고 풀어내는 일은 해외에서는 기본적으로 노인 의학적 지식을 갖춘 주치의가 담당한다. 노인과 의사가 될 수도 있지만, 내과, 가정의학과 등 다양한 전문과의 의사나 일반 의사가 주치의 시각에서 노인 의학적 진료를 하는 경우가 많다. 영국은 1940년대부터 노인과 의사가 이 역할을 맡았다. 우리나라와 의료 지불 제도가 비슷한 미국에서도 노인 의학을 활용하여 의료 시스템의 효과를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보훈병원과 비슷한 개념인 재향군인병원에서는 노인 의학이 의료와 돌봄을 아우르는 역할을 한다. 의료진이 약을 줄이는 일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일본은 6가지 이상 약을 복용하는 환자에게 2가지 이상 약을 줄이면 2016년부터 수가를 2500엔(약 2만1000원) 지급하고 있다.

환자는 답답하다. 아프고 힘이 들더라도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의사가 없다. 하지만 의사 마음은 더 답답하다. 루이스 캐럴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붉은 여왕이 사는 곳에는 가만히 멈춰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뒤로 밀려나버리는 법칙이 있다. 그래서 같은 곳에 있으려면 쉬지 않고 힘껏 달려야 하고, 어딘가 다른 데로 가고 싶으면 두 배쯤 빨리 달려야 한다. 우리나라의 의료 수가 체계는 검사나 시술 등 눈에 보이는 행위에 맞춰져 있다. 가장 오르지 않는 것은 진찰료다. 환자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면,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이익이 되지 않는다. 병·의원은 생존을 위해 값비싼 신기술을 끊임없이 도입해 수가를 보전한다. 개별 환자의 진료에 쓸 수 있는 시간은 자꾸 쪼그라들기만 한다. 복잡하게 꼬인 어르신들의 질병과 약 문제는 보건복지의 다른 ‘시급한’ 문제에 밀려 항상 뒷전이 된다. 결국 환자와 의사는 멀어지고, 그 사이엔 처방전만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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