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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세상 돌아보기> 살아온 곳에 계속 살게 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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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3-05-18 12:19 조회 56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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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18 06:00

김기호 논설위원,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도시설계)

친구들과 한담하는 중에 이사 이야기가 나왔다. 한 친구가 “난 열 번도 넘게 이사했지.” 하면서 고생했지만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이야기한다. 다른 친구가 비웃으며 “야! 명함도 내밀지 마. 20번 이상은 해야 고생했다고 하지.” 하고 말했다. 집에 돌아와 나의 이사 이력서를 써보니 놀랍게도 결혼 후 40여년 간에 무려 24번(해외 9회 포함)이나 이사를 했다. 그중 20번은 여기저기 셋방살이였다. 이제 종심(從心)을 지나고 나니 앞으로도 얼마나 어디로 더 이사를 해야 영원히 살 집에 들어가게 될지 슬슬 좀 겁이 나기 시작한다.

현재 지역사회에 살고 있는 노인(75세 이상 후기노인)의 90%가 지금 사는 집에서 계속 살고 싶어 한다. 죽을 때까지 지금 사는 집에 계속 살고 싶다는 비율도 85%에 달했다. 나아가 75%는 노인용 주택이나 요양시설로 이사한다고 해도 지금 사는 곳이랑 가까웠으면 좋겠다고 응답했다. 요양시설은 가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곳으로 받아들였다(이윤경 외, 노인의 지역사회 계속 거주(aging in place)를 위한 장기요양제도 개편 방안,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7). 이런 조사결과는 결국 익숙한 환경이 노인들에게 안정감을 주고 생활양식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정부도 지역사회 내 주거와 의료, 요양, 돌봄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커뮤니티 케어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계획에는 노인들이 평소 살던 곳에서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주거지원 기반 확충이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신규 공공임대주택을 케어안심주택(주거와 의료, 요양, 돌봄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으로 공급하고, 노인 친화적 주택 개조 사업을 골자로 하는 주거 기반을 구축한다는 내용이다(보건복지부 보도자료, 2018.11.). 기왕에 살아온 주택과 동네를 버리고 시설로 이사 가야 하는 복지가 아니라 살던 곳에서 계속 생활하며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으로, 매우 큰 노인복지 정책 전환이다.

삼삼오오 동네 주변을 산책하는 어르신들. 노인용 보행기를 미는 사람, 걷는 사람, 휠체어에 앉은 사람 등 다양한 사정에 맞춰 동네 친구들과 담소하며 함께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 . 사진: 김기호, 2018

삼삼오오 동네 주변을 산책하는 어르신들. 노인용 보행기를 미는 사람, 걷는 사람, 휠체어에 앉은 사람 등 다양한 사정에 맞춰 동네 친구들과 담소하며 함께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 . 사진: 김기호, 2018

유엔(UN)도 마드리드 플랜(2002)을 통해서 시설 위주의 정책을 과감히 포기하고 ‘노인의 지역사회 계속 거주(Aging in place; AIP)’와 커뮤니티 케어를 통해 지역 공동체 내에서 노후를 보낼 수 있게 할 것을 강하게 권고한 바 있다.

이런 모든 것들은 결국 고령자의 최후의 집이 어디여야 하는가를 묻는 것이며 답은 분명하다. 이를 위한 용의주도한 실천이 남아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 연령별 인구구조는 매우 빠르게 변해서 18%이던 고령인구(65세 이상, 2022년)는 20년 이내에 34%, 50년 이내에 46%로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행안부 보도자료, 2023.1.15.와 통계청 장래인구추계 2020~2070). 급격한 인구변화 예측과 앞에 언급한 노인복지정책 변화는 미래 환경을 설계하는 전문분야인 건축이나 도시계획에 매우 큰 과제를 던져 주고 있다. 주택(아파트) 재건축은 기획부터 입주까지 대략 10여 년 이상을 생각한다. 그러므로 현재 활발히 기획되고 진행되는 모든 주택 재개발, 재건축은 향후 입주자의 3분의 1 정도가 고령자들이 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계획과 시행에 더 시간이 걸리는 도시계획은 앞으로 반 가까이가 고령자들이 살게 되는 도시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제 고령자 주택은 저소득층이나 경제력 있는 사람을 위한 예외적 주택형이 아니며 무장애(無障礙) 도시나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 연령, 성별, 장애 유무 등에 관계없이 누구나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 디자인)은 도시를 만드는 일상적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보행자와 노약자(휠체어 포함)가 계단(경사로)을 오르며 중간쯤에서 한 번 같이 쉬거나 만날 수 있게 해 심리적으로 동행하는 느낌을 주는 계단디자인. 유니버설 디자인의 한 시도로 볼 수 있다. 독일 아헨(Aachen)시 Kandelfeldstr. 도면: 아헨시청 도시설계과(B-Plan과), 1985.보행자와 노약자(휠체어 포함)가 계단(경사로)을 오르며 중간쯤에서 한 번 같이 쉬거나 만날 수 있게 해 심리적으로 동행하는 느낌을 주는 계단디자인. 유니버설 디자인의 한 시도로 볼 수 있다. 독일 아헨(Aachen)시 Kandelfeldstr. 도면: 아헨시청 도시설계과(B-Plan과), 1985.

우리나라 대도시 아파트단지는 밀도가 높아 경제성 있는 ‘노인의 지역사회 거주’와 커뮤니티 케어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아파트단지 재건축은 상당한 부분의 주택을 고령자 친화형으로 하여야 하며 단지 차원에서도 오랜 기준에 따라 경로당 하나 만드는 데 그치지 말고 게스트하우스나 임대주거 형태의 노인주택동(棟)을 마련하여 주민 중 독립적 생활이 어려운 분들이 시설로 가지 않고 함께 거주하는 케어 홈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

독일 아헨시 칸델펠트가(街) 계단 및 경사로 시공 후의 모습. 사진: 김기호, 2008. 독일 아헨시 칸델펠트가(街) 계단 및 경사로 시공 후의 모습. 사진: 김기호, 2008. 

현재 많은 고령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살던 주택(또는 동네)거주’냐 '기피(忌避)하는 시설 입소'냐를 놓고 깊은 번민 속에 빠져 있다. 이들에게 그 중간에 새로운 길과 여건을 만들어 주는 기회가 국민 60% 이상이 살고 있는 아파트 재건축 기획에 들어 있어야 한다. 결국 주택과 동네 등 일상적 삶의 환경이 복지이며 이는 노령자에게 더욱 절실하다. To be, or not to be: that’s the question. (‘햄릿’ 3막 1장, 윌리엄 셰익스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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