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개·폐업 잦은 노인요양시설…‘임대’ 운영 허용, 득일까 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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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3-05-04 11:08 조회 550회 댓글 0건본문
보험사들, 현행 시행규칙 고쳐 임대 허용 로비
선택권 늘리지만 폐업 잦아 주거안정성 흔들려
급속한 고령화로 장기요양서비스 산업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연합뉴스
보건복지부가 10인 이상의 노인요양시설을 설치하려면 토지를 소유하거나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공공임차해야 가능한 현 노인복지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타인 소유의 사유지나 건물을 임대해도 설치∙운용이 가능하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방안은 그동안 보험사들이 요양서비스 산업에 진출하기 위해 오랫동안 정부에 ‘요청’해 온 사항으로 최종 확정될 경우 입소 노인들의 주거 불안이 가중되는 데다, 기존 요양시설 운영자들의 반발 등 파장이 예상된다.
복지부의 이런 움직임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보험사들과 생명보험협회 쪽이 어느 때보다 큰 기대감을 갖는 이유다. 생명보험협회 관계자는 “복지부가 이전과 달리 저희 쪽 취지에 공감을 표하고 있다”며 “협회도 이런 분위기에 맞춰 연구용역을 발주해 이른 시일에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협회의 연구용역을 맡은 송현종 상지대 교수(의료경영학과)는 “연구의 핵심은 땅이나 건물을 임대해서 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해, 보험사 등 사업자들의 초기 투자 비용 부담을 낮추는 것”이라며 “필요성과 타당성을 다각도로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보험연구원 쪽은 “사실상 (규제를) 푸는 쪽으로 결정이 이뤄진 것으로 안다”며 숫제 ‘임대 허용’을 기정사실로 여기는 분위기다.
KB 해보험이 요양산업 진출을 위해 세운 자회사 ‘KB골든라이프케어’가 운영하는 노인요양시설 ‘서초빌리지’의 전경. 서울 서초구 우면동에 자리한 이 곳은 ‘고품격 서비스’를 내세우며 1인실과 2인실, 치매전담실을 운영한다. 1인실과 치매전담실은 비용은 한 달 300만원 대에 이른다. 이창곤 선임기자
자금력이 비교적 큰 보험사들이 요양산업에 진출하는 데 ‘임대 불가’란 시행규칙이 절대적 장벽은 아니다. 케이비(KB)손해보험이 이미 진출했다. 이 회사는 2016년 케이비골든라이프케어란 자회사를 세워 서울 송파구와 서초구에서 ‘고품격 요양시설’을 내세우며 ‘위례빌리지’와 ‘서초빌리지’를 설치∙운영하고 있다. 보험연구원 관계자는 “사업이 혹 잘못됐을 때, 평판을 잃을까라는 부담이나 요양보호사 등 관리 부담 등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뜻을 지닌 보험사들의 요양산업 진출의 진입장벽에는 노인복지법 시행규칙이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노인요양시설 임대 허용’은 보험사들의 오랜 요청, 즉 로비 사항이었다. 지난 2021년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 등 금융당국이 ‘보험사의 요양서비스 사업 진출 간담회’를 열고 공식 보도자료를 낸 것은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의 집요한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복지부는 ‘수용 불가’를 확고하게 견지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분위기가 달라졌다. 현 정부가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친기업적 규제 완화 정책을 전개하는 가운데, 보험사들은 지난해부터 금융위원회와 기획재정부 등 정부 각 부처는 물론 대통령실 등에 “노인요양시설을 임대해 운영하도록 해달라”는 로비를 적극적으로 전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회와 보조를 맞추며 사업 진출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대표적인 보험사는 신한라이프생명보험과 농협생명이다. 이미 법적 요건을 갖추어 요양시설을 설립해 운영하는 케이비손해보험도 상황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보험사들의 이런 움직임은 “구매력을 갖춘 베이비부머 세대가 요양시설 이용자로 진입하는” 등 가파른 고령화로 국내 요양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이란 전망을 배경으로 한다. 케이비골든라이프케어는 ‘국내요양서비스 활성화를 위한 논의 자료’란 제목의 내부 자료에서 2012년 2.9조원이던 국내 요양시장이 2020년엔 10조 규모로 연평균 16.6% 성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회사는 같은 자료에서 “국내 요양시장은 서울 등 대도시에 공급이 부족하고 서비스 품질이 낮다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험사들이 주목하는 지역도 복지부가 공급 부족이라고 꼽은 서울을 비롯한 부산, 울산, 세종, 광주 등 대도심 권역이다. 토지 및 건축비가 많이 들어 개인사업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이다. 보험사들은 그동안 임대 허용 필요성의 근거로 요양시설이 대도시 시민들의 주거지역 지근거리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을 내세워 왔다. 이들은 “임대가 허용되면 토지와 건물의 소유권을 확보해야 시설 설치가 가능한 규제로 인한 초기 비용 부담이 상당 부분 해소돼 도심권의 요양시설 부족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요양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헬스케어’ 분야에서 많은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다수의 노인복지 전문가들은 ‘요양시설 임대 허용’ 방안에 대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임대를 허용하면 사업자가 요양시설을 폐업할 경우 입소 노인들의 주거 불안정이 더 가중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지금도 장기요양기관은 개업과 폐업이 빈번히 이뤄진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보면, 10인 이상 요양시설의 폐업률은 4.59%(2020년 기준)에 이른다. 임대가 가능한 10인 미만의 노인공동생활가정은 폐업률이 9.11%로 더 높다. 이 때문에 복지부는 지난 2019년엔 당초 건축 요건을 갖추고 신고만 하면 요양시설 운영이 가능했으나 이후 장기요양보험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휴∙폐업을 반복한 기관을 지방자치단체장이 지정을 거부할 수 있는 지정제로 전환했다.
전문가들은 임대가 허용되면 이들 시설에서도 갑작스런 폐업으로 급히 다른 시설로 옮겨야 하거나 사업자가 임대보증금을 지불하지 않고 잠적하는 등으로 인해 입소 노인들의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광주대 문용필 교수는 “요양기관들의 폐업에 따른 피해를 생생히 보여주는 실태조사를 담은 공식자료가 거의 없어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복지부가 이 점을 살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는 거대 금융자본이 설립한 요양시설이 폐업하면서 이른바 ‘요양시설 난민’을 낳은 사례가 학계에 보고돼 있다.
또 다른 반대 이유는 가뜩이나 요양시설 운영자의 다수가 개인사업자인데, 임대를 허용하면 기존의 사업자들이 임대로 전환하거나 신규 사업자의 진입과 퇴출이 더 쉬워 시설이 더욱 난립할 것이란 우려다. 사실상 자영업자인 개인사업자들의 수익 중심의 경영에 따른 영리화가 심화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2021년 현재 노인요양시설(10인 이상의 시설)과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을 포함한 전체 장기요양시설은 전국 5988곳인데, 이 가운데 75%(4503곳)가 개인사업자에 의해 운영된다. 나머지 22%에 이르는 1354곳은 법인이 운영하며, 지자체가 직접 운영하는 곳은 0.01%인 118곳에 그친다.
서동민 백석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애초 요양시설에 관한 시행규칙을 정할 때 소유를 하도록 한 데는 분명한 원칙과 이유가 있었다”며 “입소 노인의 권익 보호란 원칙이 흔들리는 어떤 조처도 바람직하지 않기에 (임대 허용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도심지 요양시설 부족은 국가나 지자체가 기존 복지관 등을 활용하는 등 공적인 형태로 대안을 마련하는 게 더 바람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건의료 등 일부 학자들 가운데 ‘찬성’ 또는 ‘조건부 찬성’의 의견을 내는 이들도 있다. 권순만 서울대 교수는 “현실적으로 영세한 시설에 문제가 많고, 의료와 달리 요양은 상대적으로 소비자의 선택 가능성이 좀 더 있다”고 말했다. 양질의 요양서비스를 원하는 소비자가 있는 만큼 규제를 완화해 선택의 범위를 더 넓혀줄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기존 노인요양시설 운영자들은 거세게 반발할 태세다. 조용형 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장은 “복지부가 보험사의 요양산업 진출을 위해 요양시설의 임대를 최종 허용한다면 기존 사업자들과의 형평성에 맞지 않을 뿐더러 상식을 벗어난 정책”이라며 총력을 다해 맞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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