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노인일자리체험수기[4]- 권덕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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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일자리를 마치며
권덕출
우연한 기회에 노인보호기관에서 일하는 행운을 얻었다.
우선 노인이 많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늘어나는 노인인구의 심각성을 우려하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노인을 만나면서 그 실태를 실감할 수 있었다. 다양한 노년의 삶과 맞닥뜨리며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는데 내가 만난 노인들의 말년이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남의 행복을 함부로 판단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노인들이 불행하게 보인 까닭은 대부분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이다. 나이 칠십, 팔십이 넘다 보면 온전한 건강을 유지하기 어려운 것은 자연이치이다. 더구나 운동을 하지 않아서와 같은 상식적인 사소한 것들을 간과해서 거동을 못하는 처지에 놓인 것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리고 아들이 이혼을 해서, 며느리가 가출해버려 오갈 데 없는 손자와, 혼기를 놓친 나이 찬 자식들을 곁에 두고 이들을 돌보느라 자식들에게 매어 자신의 인생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여러 질병에 시달리는 노인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노릇이고, 이로서 받는 스트레스가 노인들을 가장 불행하게 하며 큰 짐이 되기도 했다.
지금의 노인들은 어려운 시대를 살아오느라 전혀 노후대책이 없는 세대다. 그 시절에는 자녀가 많아 그 바라지 하다 보면 자신들의 노후를 걱정할 여유가 없었다. 많은 자녀를 두고도 자녀들로부터 기초적인 생계보장도 받지 못한 채 혼자 외롭게 지내는 사례도 있었다. 자식들은 자신들 살기가 너무 급급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부모를 외면한 것이 되어 버리지 않았나 싶다. 건강이 허락하는 노인은 복지관으로, 식사하러 맛나 집으로, 폐지 수집하러 거리로 나가 그나마 만나기도 어려웠다. 요즈음은 노인들이 오히려 될 수 있으면 자식과 같이 살지 않으려는 추세라고 한다.
다행하게도 어려운 노인들에게, 기초생활수급비며, 노령연금이며 동사무소에서, 각 교회에서 또 부녀회에서 지원하는 구제와 후원금이 지급되고 있어 자식들이 돌보지 않아도 최소한의 생계는 해결하고 있어 다행이었다. 또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에게 도우미가 찾아와 병원에 모시고 간다던가 세탁과 청소를 하고 목욕을 시켜주고 있었다. 나도 70이 넘었지만 이 일을 하기 전에는 독거노인에게 이런 혜택이 주어지고 있는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자식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노후를 당당하고 품위 있게 보낼 수 있는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이제 우리나라도 노령사회로 접어들어 노인복지가 더 나아지면 학대 받는 노인도 없지 않을 까 싶다.
나는 이 일을 하면서 자신이 건강하다는 그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복된 사람인지 깨달았다. 인생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에 꾸준히 삶을 가꾸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학대 받는 노인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물리적 학대만 학대가 아니고 원하지 않는 손자들과 출가하지 않은 자녀를 돌보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자식이 부모에게 가하는 일종의 학대가 아닐까 싶다. 부모는 자식에게 다소 학대를 받고 있다 손쳐도 모든 고통을 감수하고 결코 신고하지 못한다. 부모와 자식의 사랑은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노인 스스로 자식의 학대를 신고하는 사례는 없지 않을까 싶다.
나는 이 일을 끝내면서 과연 그들에게 희망을 주었는지 반성해본다. 남은 날 동안 좀더 향상된 삶을 살 수 있는 희망과 위로를 주었다면 그런 다행이 없겠다. 내 개인으로는 이 일을 하면서 전에 없이 기동력이 생긴 것이 큰 변화이다. 노인보호기관에서 일하게 되 것은 더 없는 은총이며 값진 경험이었다.
권덕출
우연한 기회에 노인보호기관에서 일하는 행운을 얻었다.
우선 노인이 많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늘어나는 노인인구의 심각성을 우려하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노인을 만나면서 그 실태를 실감할 수 있었다. 다양한 노년의 삶과 맞닥뜨리며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는데 내가 만난 노인들의 말년이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남의 행복을 함부로 판단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노인들이 불행하게 보인 까닭은 대부분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이다. 나이 칠십, 팔십이 넘다 보면 온전한 건강을 유지하기 어려운 것은 자연이치이다. 더구나 운동을 하지 않아서와 같은 상식적인 사소한 것들을 간과해서 거동을 못하는 처지에 놓인 것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리고 아들이 이혼을 해서, 며느리가 가출해버려 오갈 데 없는 손자와, 혼기를 놓친 나이 찬 자식들을 곁에 두고 이들을 돌보느라 자식들에게 매어 자신의 인생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여러 질병에 시달리는 노인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노릇이고, 이로서 받는 스트레스가 노인들을 가장 불행하게 하며 큰 짐이 되기도 했다.
지금의 노인들은 어려운 시대를 살아오느라 전혀 노후대책이 없는 세대다. 그 시절에는 자녀가 많아 그 바라지 하다 보면 자신들의 노후를 걱정할 여유가 없었다. 많은 자녀를 두고도 자녀들로부터 기초적인 생계보장도 받지 못한 채 혼자 외롭게 지내는 사례도 있었다. 자식들은 자신들 살기가 너무 급급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부모를 외면한 것이 되어 버리지 않았나 싶다. 건강이 허락하는 노인은 복지관으로, 식사하러 맛나 집으로, 폐지 수집하러 거리로 나가 그나마 만나기도 어려웠다. 요즈음은 노인들이 오히려 될 수 있으면 자식과 같이 살지 않으려는 추세라고 한다.
다행하게도 어려운 노인들에게, 기초생활수급비며, 노령연금이며 동사무소에서, 각 교회에서 또 부녀회에서 지원하는 구제와 후원금이 지급되고 있어 자식들이 돌보지 않아도 최소한의 생계는 해결하고 있어 다행이었다. 또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에게 도우미가 찾아와 병원에 모시고 간다던가 세탁과 청소를 하고 목욕을 시켜주고 있었다. 나도 70이 넘었지만 이 일을 하기 전에는 독거노인에게 이런 혜택이 주어지고 있는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자식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노후를 당당하고 품위 있게 보낼 수 있는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이제 우리나라도 노령사회로 접어들어 노인복지가 더 나아지면 학대 받는 노인도 없지 않을 까 싶다.
나는 이 일을 하면서 자신이 건강하다는 그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복된 사람인지 깨달았다. 인생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에 꾸준히 삶을 가꾸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학대 받는 노인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물리적 학대만 학대가 아니고 원하지 않는 손자들과 출가하지 않은 자녀를 돌보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자식이 부모에게 가하는 일종의 학대가 아닐까 싶다. 부모는 자식에게 다소 학대를 받고 있다 손쳐도 모든 고통을 감수하고 결코 신고하지 못한다. 부모와 자식의 사랑은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노인 스스로 자식의 학대를 신고하는 사례는 없지 않을까 싶다.
나는 이 일을 끝내면서 과연 그들에게 희망을 주었는지 반성해본다. 남은 날 동안 좀더 향상된 삶을 살 수 있는 희망과 위로를 주었다면 그런 다행이 없겠다. 내 개인으로는 이 일을 하면서 전에 없이 기동력이 생긴 것이 큰 변화이다. 노인보호기관에서 일하게 되 것은 더 없는 은총이며 값진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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